-
-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많이들 궁금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뭐가 궁금해하셨을 라구요.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한밤이나 새벽에 울리는 전화만큼 심장을 철렁이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요.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보다가 그만두고 얼른 머릿속을 스치는 몇몇의 사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늦은 밤 너무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주변의 성화에 얼른 전화를 걸어야 했기에 미안한 마음에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바로 연락이 와서 놀랍기도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팠다는 거죠. 도저히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응급실에 갔습니다.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했어요. 수액 한 병 맞고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그런 처방을 스스로 내리다니. 급히 입원을 하면서 걱정이었던 집의 상태였습니다. 언젠가는 먹을 거라고 냉장고에 쟁여둔 음식과 미처 정리하지 못한 빨래. 그동안 미니멀한다고 설쳐댔는데 반성합니다.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미니멀. 아프기 전에 읽은 송지현의 소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챙겨 달라고 했어요.
읽을 수 있을까.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와중에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해열제를 맞고 정신을 차리면 지금을 읽을 수 없는 책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쳐다보았습니다. 쳐다보다가 책장을 넘길 힘이 있겠다 싶어 책을 들었습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지만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끼기에는 적당한 무게였습니다. 송지현의 소설은 아픈 와중에도 척척 읽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생활이 어렵고 다정하고 정이 많습니다. 가족이 모여도 가족 같지 않은 풍경에 스산해질법한도 하지만 허탈한 유머로 극복해냅니다. 직장에서의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무심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병실에 누워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는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에서 애틋함을 느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고통이 없다면 말입니다. 아니 고통이 있어도 살아만 있으면 응급실에 가고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을에 제가 먹을 수 있었던 건 라면과 편의점 과일이었습니다. 혼자 울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밤의 자판기 앞에서 음료가 담기지 않은 캔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더할 나위 없이 깨달았어요.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의 미덕은 이런 것입니다. 환자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호흡으로 쓰였다는 것. 몸의 고통을 전부 잊게 해주는 건 아니었지만 현실에 맞닿아 있는 풍경을 내어주며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 모두 아프지도 다치지도 말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지내요. 겨울에는 군고구마와 귤 그리고 치킨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