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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꿈과 토템
은모든 지음 / 민음사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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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여름인 것 같은 착각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다 재채기를 연속으로 하는 순간 아, 가을 말하면서 문을 닫는다. 이미 여러 벌 가지고 있는 비슷한 패턴의 셔츠를 사놓고 몇 번 입지도 못했다. 아, 겨울 이러겠지. 휴일에도 청구서는 날아오고 숫자를 한참 바라보다 찬물을 마신다.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등은 아프고 다리는 조금씩 붓다가 가라앉고 있다.
책 읽기는 더딘 반면에 책 사기는 미친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누워서 그나마 힘을 내어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와 책 사기. 오늘은 책 사기에 더 집중한 하루이다. 힘들고 지칠 다음 주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집에 돌아오면 고지서와 택배가 쌓여 있겠지. 은모든의 소설집 『꿈과 토템』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은 매일 지치고 매일 짜치고 매일 슬픈 나를 위로한다.
도대체 누가 훔쳐 간 건지 모르겠다, 나의 집중력. 멍하니 앉아서 한 곡의 음악만 반복해서 듣는 것 외에는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내게 『꿈과 토템』에 실린 간략하고 짧으면서 온기 있는 소설들은 괜찮아 네가 이해 못 해도 내가 너를 이해하고 있단다 하고 말해준다. 다중우주의 세계 속에서 오늘은 네가 졌지만 다른 세계에서 오늘의 다른 너는 이기고 있다고도.
「꿈은, 미니멀리즘」을 읽으면서 여름옷 정리하자 생각했다. 번아웃에 가까운 상태의 주인공은 집 안에 불필요한 짐들을 정리한다. 그 모습에 나 역시 동기부여받아서 버리자, 정리하자 생각만 했다. 실천은 아직. 생각만 한 게 어디야. 이런 생각들이 쌓여 겨울이 오기 전에 정리하겠지. 「모닝 루틴」의 그녀들. 은하와 민주, 성지를 다시 만나면서 명절이 별 건가. 마음 맞는 이들과 만나 맛있는 거 먹으면서 깔깔깔 웃으면 되는 거지. 기분 좋은 마음이 들었다.
「친구가 되어드립니다」에서는 연애를 시작할까 말까의 망설임이 묻어나 흐린 일요일의 배경색을 밝게 칠할 수 있도록 만든다. 어떤 오해와 어긋남 때문에 시작할 수 없는 만남은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다는 필연이 작용해 연애의 길로 이르게 한다. 『꿈과 토템』 속 이야기는 너무나 사소한 일상의 풍경을 그리고 있어서 너무나 예쁘고 소중하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하루하루라면 심장과 폐는 남아나지 않겠지. 계속 기쁠 수도 계속 슬플 수도 없다. 직장에서 있었던 부당한 일을 이야기해도 가만히 들어주는 친구. 하기 힘든 기름진 음식을 잔뜩 싸 들고 오는 친구. 좀비떼가 습격해도 집에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는 가족. 은모든의 다중 세계의 우주에서는 세상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그 모든 다정함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번역 없이 노벨문학상의 소설들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오늘 나의 슬픔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게 사실로 밝혀졌다. 요즘 자주 꿈을 꾼다. 잠에서 깨면 무슨 의미였지 생각해 보지만 다시 잠에 빠진다. 분주한 낮을 보내고 밤에 이르면 꿈의 잔상들이 남지만 그것 또한 피곤함에 잊힌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이야기뿐이리라. 내가 말하지 못하고 숨기고 있는 비밀 이야기를 사랑 느낌으로 변환해 들려주는 작가들에게 오늘을 기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