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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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 방기한 유튜브 선생님이 추천해 준 노래가 있으면 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 게 요즘 나의 힐링의 순간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데이식스의 〈 congratulations 〉를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다. 소리를 광광 크게 틀어 놓고 멍하니 있으니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싹 사라지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엷어지는 기분이다. 연속 재생해서 가사를 외울 때까지 들어보자.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좋아해서 한동안 목록을 적어 놓고 읽던 시기가 있었다. 그 후로도 이사카 고타로의 신간이 나오면 냅다 주문부터 갈긴다. 책이 오면 바로 읽는다.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은 그런 힘이 있다. 읽고 있으면 힘이 난다. 소설 곳곳에 이상한 용기를 심어 놓고 위로를 한다. 『종말의 바보』는 예전에 읽었지만 늘 그렇듯 그때 좋았고 지금은 기억에 나지 않았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가 나오고 다시 한번 읽어볼 요량으로 책을 찾았지만 이게 뭐야 품절이란다. 비싼 중고책이라도 사서 읽어보려고 했지만 여러 번 주문취소 당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또 늘 그렇듯 일하다 마음이 좋지 않아 서점 앱을 열어 신간 목록을 훑었다. 어 어 어 뭐지 했는데 『종말의 바보』가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나 같은 독자들이 많았구나.(드라마로 나오자 원작을 읽어보고 싶은 문학적인 소양이 풍부한.)


병원 갔다 바로 집에 가기 싫어서 카페에 들러 『종말의 바보』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중 네 편을 읽었다. 커피 내리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주문을 받고 알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천천히 느릿느릿 소설을 읽어 갔다. 묘하게 집중이 잘 되었다. 오늘의 걱정과 내일의 불안은 『종말의 바보』를 읽어가는 동안 흐릿해져 갔다. 8년 후에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설정의 이야기이니까.


죽는 건 무섭다는 게 아직까지도 기본값이다. 가끔씩 아플 때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때 이게 죽는 건가 겁쟁이는 그런 생각에 빠진다. 좀, 많이 무섭구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는 겁쟁이 바보에게 죽음이란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란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상하게 말해주는 소설이다. 


결코 무섭고 공포스럽지 않다. 8년 후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방화와 약탈, 살인이 일어난다. 소설의 배경은 센다이 북부에 있는 '힐즈 타운'이다. 어느 정도 소란이 가라앉은 시점으로 소행성이 충돌하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고 종말의 시간에도 아이를 낳아 길러 보겠다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다. 


비디오 연체자 명단을 뽑아서 그들을 찾아가고 복싱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낸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고 싶어 하고 가족을 연기하며 유사 가족을 꾸리기도 한다. 매일 종말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런 마음을 강요하는 건 아니고 나에게만 그렇게 해보라는 거다. 내일 죽는다. 너는 어떻게 오늘을 보낼래?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린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바보라서 이런 다짐을 잊어버리겠지만 좋아하는 걸 한정 없이 좋아하는 걸로 종말의 시간을 유예하기로 한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바보라는 것도 좋다. 새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는 시간을 나에게 선사해주는 거라서. 바보야 오늘도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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