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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평점 :
그러니 괜찮을까.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낸다거나 극복해낸다거나 하는 마음 없이도. 문미순의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소설 속 인물인 명주와 준성이 처한 현실이 가혹해서 빛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어서 과연 그들이 오늘을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가슴이 아파서 끝내는 눈물이 터져 나와서 힘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니다. 매 순간 힘들다. 매 순간 지친다. 가끔 괜찮고 가끔 힘이 난다. 가끔의 순간이 매 순간을 버티게 해준다. 나만 힘든 건 아닐 거야. 그러다 나만 힘든 거 아니야?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기분은 기분이니까. 기분에 충실해지기도 한다. 이런 나의 감정의 상태를 '짜친다'는 말로 표현한다.
짜쳐 있는 나는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으면서 반성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기대어서 말이다. 비겁한 방식으로 나의 힘듦을 털어낸 것이다. 명주와 준성이 처한 현실에 비하면 나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말한다. 치매에 걸린 엄마가 죽었다. 죽은 엄마를 발견한 명주는 간신히 생각을 부여잡는다.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고 장례를 치르게 되면 엄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받지 못한다. 명주는 아마포와 나무관, 방습제를 사서 엄마의 시신을 작은방에 모신다. 엄마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서 연금을 계속 받으려고 말이다.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생계를 꾸려 가던 명주는 급식실에서 일하다 발에 화상을 입는다. 50대, 여자, 명주는 그 후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명주 옆집에 사는 준성은 스물여섯. 고등학교 3학년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학교는 자퇴했고 검정고시로 겨우 대학에 진학한다. 물리치료학과를 나왔지만 돈을 버느라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아버지가 받는 연금에 돈을 더해서 생활을 이어간다. 형이 있지만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라졌다.
명주와 준성은 각자의 부모를 간병하느라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유예한다. 꾸역꾸역 하루를 버틴다. 온전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말이다. 명주는 엄마의 시신을 작은방에 놓아두고 나온 연금으로 화장품을 산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못하던 명주는 잠시나마 불온한 해방감을 맛본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명주와 준성의 기묘한 연대가 시작된다.
소설의 제목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오래 되뇌어 보았다. 내가가 아닌 우리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라니. 소설의 내용에 기대어 제목으로 독자를 울게 만든다. 빛이 없을 것 같은 긴 터널을 지나는 것만 같은 그들의 하루가 끝내는 미약한 불빛으로 밝아진다. 한참의 어둠 뒤에 나타난 빛은 오늘에 이어 내일을 살게 만든다. 그거면 됐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내일을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