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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칵테일, 러브, 좀비 ㅣ 안전가옥 쇼-트 2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평점 :
어쩐지 이 세계에는 어둠과 슬픔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나의 기분마저도 내가 어쩌지 못할뿐더러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무느라 한여름인데도 입이 텄어요.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양쪽 입가가 아파서 입을 다물게 됩니다. 조금씩 먹고 느리게 삼킵니다. 어떤 하루에는 밥을 먹지 않기도 해요. 귀찮죠. 귀찮아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내가 구해야 하다니. 차라리 안 먹고 말죠.
그럼 이건 어떨까요?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기분을 알아주는 이야기와 문장을 만나는 것. 참을 수 없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 먹을 걸 사는 돈을 아껴 책을 사는 일로. 입가가 찢어지는 고통을 외면해 보는 일.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 그런 감정에 나를 놓아두고 허구의 세계로 도피하는 거죠. 그 세계에서 나는 관전자가 됩니다.
가만히 조용히 말없이 먹지도 않고 인물의 고통을 지켜봅니다. 조예은의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 속 세계로 나를 끌고 들어갑니다. 남자친구의 평가에 힘들어하는 여자가 있어요.(「초대」) 그녀는 이별을 준비 중입니다. 그렇죠? 안전 이별이 될 것 같진 않죠. 「초대」의 여성 주인공들은 다릅니다. 그녀들 스스로 악당이 되어 자신을 지켜냅니다. 응원합니다, 저는.
맙소사. 귀신들의 사랑이라니.(「습지의 사랑」) 너무 애틋해서 나 죽어요. 물귀신과 숲귀신의 썸 그리고 연애 과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개설레기도 하고요. 숲귀신의 작업 멘트, "내일도 올게. 숨지 말고 인사해 줘. 알겠지?"를 듣는 순간 나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이를 어째. 숲귀신이 자신의 명찰을 물귀신에게 주는 장면에서는 기절인 거죠.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도 출근을 해야 한다니.(「칵테일, 러브, 좀비」) 현실에서 도망친 나를 무섭게 만드네요. 좀비로 변한 아버지 역시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갖고 행동합니다. 소름 끼치네요. 아니죠. 현실에서도 아침이면 좀비로 변신해 출근하는 내가 있었네요. 무섭고 소름 끼치는 게 아니라 일상의 일입니다. 엄마와 주연이 계속해서 행복의 빈도를 늘려가면서 지냈으면 해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말이죠.(「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어린 시절 그 밤들에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건 흉기가 되는 물건을 치우는 일이었어요. 기억나죠? 달리기가 빠르지 못해 도망가는 건 포기하고 담벼락 밑에 숨어 있었어요. 시간을 돌리는 일 따위는 상상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생각도 못 했죠. 어서 빨리 이 밤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정도였죠. 소설은 그런 밤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내가 좋아요. 어둡고 축축하고 이상한 사랑을 말하는 『칵테일, 러브, 좀비』의 세계관을 나는 사랑할래요. 이 세계와 그 세계의 사랑이 다르지 않잖아요. 낡고 누덕누덕 기운 사랑의 옷을 입을래요. 술에 취해서 하는 말들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아요. 사랑은 어디에도 없었고 어디에나 있어요. 인간의 기억을 읽은 좀비가 되어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소멸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