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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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평일에 연차를 썼다. 쉬는 날인데 일찍 눈 뜬 나 자신 반성하자. 다시 자려고 했지만 전화와 카톡이 수시로 들어와 에라이 그냥 일어나 있자 하며 눈을 뜨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누워 있다가 정신 차리고 문지혁의 소설 『중급 한국어』를 집어 들었다. 원래는 쉬는 날 어떤 무수한 많은 계획들이 있었지만 있었으나 없게 되었다. 하늘 한 번 보고 책 한 페이지 읽는 것으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중급 한국어』를 그렇게 읽었다. 여름의 하늘과 여름의 구름과 여름의 바람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소설은 나의 지나간 한 시절과 다가올 나의 시간이 교차되어 있었다. 문학을 하겠다고 까불었던 과거와 이제 나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볼까 망설이고 있는 현재가 『중급 한국어』에 안착해 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혁은 은혜와 결혼을 했고 망설임 끝에 아이를 갖기로 한다. 


결심을 했지만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생명을 갖는 일은 생각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은채라는 소중한 아이를 얻는다. 지혁은 동해와 맞닿아 있는 도시로 글쓰기를 가르치러 다니면서 생활을 이어간다. 미국에서 판 차와 비슷한 견적의 차를 구매해서 출퇴근을 하고 아이는 아빠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글씨를 써줄 정도로 자란다. 


그런 시간들 속에 문학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와중에 문학이 존재한다. 지혁의 글쓰기 수업은 문학 수업이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문학에 빗댄 인생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 문학이 있고 욕망이 있으며 고통이 죽음과 애도가 있다. 눈이 잘 안보여서 안경 때문인가 해서 안경점에 갔다. 안 보이는 증상을 이야기하니 안경을 바꾸기 전에 안과를 가라고 해서 겁이 났다. 


혼자 가기는 무서워서 카페로 피신했다. 평일에 나만 일하는 거였어?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커피를 마시며 『중급 한국어』의 후반부를 읽어 나갔다. 아직 문학 수업이 끝나지 않았기에. 은채와 은혜를 데리고 지혁은 바다에 간다. 바다를 바라보며 평화의 순간을 만끽한다. 그러다 다리 하나가 없는 외삼촌이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중급 한국어』의 특별함은 소설을 읽는 동안 문학 수업을 받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받았던 글쓰기 수업과 합평의 분위기 그리고 좌절의 기분까지 느끼게 해준다. 이상한 유머는 덤이다. 웃기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지혁의 유머는 웃기 싫은데 웃음이 나와서 자존심이 상한다. 


지혁이 가르치는 글쓰기 수업의 교재인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에서 엄마를,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한 아이를 떠올리며 다시 삶의 시간으로 걸어간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름의 월요일이었다. 눈이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은 일상이고 사람들이 가득한 카페에 앉아 『중급 한국어』를 읽으며 문학을 열망하는 일은 비일상이었다. 


그리고 사랑이 있다. 오늘의 여기와 내일의 그곳으로 연결되는 나의 사랑이 있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아직 초급 한국어에 머물러 있지만 본격적인 학습을 통해 중급 한국어의 단계로 나아갈 예정이다. 문학이 있어서 다행이며 여전히 읽을 책들이 있어 안심이다. 나의 여름은 우리의 여름이 될 것이기에 당분간 삶에 매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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