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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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열받거나 화나거나(이건 동의어인가 그래도) 짜증 나면 탕비실로 들어간다. 무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싱크대를 닦기 위해서다. 정확히 싱크대 안에 있는 거름망을 씻는다.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자주 그곳을 닦는다. 음식물이 거름망 안에 쌓일 일은 거의 없지만(왜냐. 내가 매일 비운다. 왜냐. 어떻게든 일의 어려움에서 피하고 싶어서. 딴짓을 그렇게 한다.) 수시로 그곳의 청결 상태를 체크한다. 과자나 음료, 커피, 차의 재고수량도.


점심 제공은 하지 않지만 컵라면과 햇반은 살 수 있다. 나는 매일 김치볶음밥을 싸와서 먹기에 그건 손대지 않는다. 다른 이가 먹기에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왜 이걸 내가 하고 있지라는 의문은 들지 않는다. 원래 나는 그런 잡일에 능숙하다. 화장실 청소도 열심히 한다. 물론 사무실 청소도. 탕비실 안에 냉장고에 일주일 넘게 남은 배달음식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 안 버리는지. 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마음고생.


그럴 시간에 일이나 열심히 하지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이미예의 소설 『탕비실』은 일하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쉬다가 서점사에서 보내온 신간 소개 메일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책을 소개하는 문구 '누가 가장 싫습니까?'에 꽂혔다. 이런 문구를 보고 어찌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가 가장 싫냐니. 그냥 다 싫다. 전부. 인간이라면 죄다 싫다. 그냥 느릿느릿 걸어가는 고양이에게나 마음을 주고 싶다. 


『탕비실』은 회사 탕비실에서 만나는 민폐쟁이 혹은 악당을 뽑아 리얼리티 쇼에 참가 시키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의도는 아니었다는 거 안다. 직장이 아닌 일상에서의 생활 습관 대로 행동했던 것뿐인데 악당으로 인식될 줄이야. 공용 얼음틀에 콜라, 커피 얼리고 커피믹스 챙겨가고 싱크대에 텀블러를 담가두는 사람들. 열받아서 머리를 식히러 갔는데 혼자 계속 떠드는 사람을 만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케이크 상자를 가득 채워 넣은 모습을 본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차출된 그들은 일주일간 합숙을 하며 제작진이 심어 놓은 술래를 찾는 게임을 한다. 남녀 8명으로 시작했지만 5명이 남았고 그들은 규칙을 어겨가며 술래 찾는 힌트를 얻는다. 과연 누가 술래인가. 소설의 화자는 '공용 얼음 틀에 커피, 콜라를 얼리는 사람'인 얼음이다. 얼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탕비실'이라는 리얼리티 쇼의 진짜 의미를 알아간다. 타인을 악당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이 악당으로 본의 아니게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깨닫는다. 


배려라고 생각했던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는 공포나 불쾌함으로 다가갔다. 이상한 사람으로 말이다. 왜 저래. 좋은 사람까지는 아니고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과한 친절과 배려를 보여준 것뿐인데 악당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닐 거야는 착각이다. 『탕비실』은 나의 친절이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친철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돈을 벌러 간 것뿐인데 인류애가 뿌셔지며 나조차도 나를 미워하게 되는 그곳. 그래도 나 내일은 연차라서 쉰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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