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샤워
다카세 준코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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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이 나오고 수압은 적당하고 머릿결에 맞는 샴푸와 향이 강하지 않은 비누 그리고 치약까지. 하루에 두 번 샤워를 한다. 출근하기 전에 한 번 퇴근하고 나서 한 번. 다행이다. 이 모든 게. 한동안 병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씻는 게 불편하고 어려웠다. 1인실이 아니고서야 공용 샤워실에서 씻어야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집에 가서 씻고 오는 게 편했다. 


땀을 흘리면 불쾌하다. 냄새에 민감해서 땀 냄새가 날까 봐 신경 쓰인다. 빨래는 쌓아놓지 않고 매일 손빨래를 한다. 옷에서 냄새가 나면 안 되니까. 절대 부지런한 편은 아닌데 냄새 때문에 움직인다. 다카세 준코의 소설 『샤워』는 어느 날부터 목욕하지 않은 남편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내 이쓰미는 남편 겐시의 목욕 수건을 보고 남편이 목욕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다. 


며칠 동안 똑같은 수건이 욕실에 걸려 있다. 이쓰미는 남편에게 목욕했냐고 묻고 남편은 이제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소설의 첫 장면부터 암담하고 답답하다. 씻지 않는 남편이라니. 그런 사람과 계속 생활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어지럽다. 남편이 목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고 그게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수돗물은 참을 수 없지만 생수는 괜찮다. 이쓰미는 생수를 사서 남편의 몸을 씻기려 한다. 그마저도 남편은 춥다는 이유로 겨우 세수와 머리 감기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에게서는 냄새가 나고 옷도 더러워진다. 참을 수 없지만 이쓰미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도와주고 싶지만 남편이 견뎌내야 하는 힘듦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기에 그저 지켜볼 뿐이다. 


아이는 없고 각자 사 온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이런 생활을 시어머니는 소꿉장난이라고 한다. 남편이 씻지 않는다는 걸 안 시어머니는 이쓰미에게 책임을 돌린다. 다카세 준코가 그리는 『샤워』 속 결혼 생활은 평범해 보이지만 속은 어둡고 불쾌함으로 가득했다. 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불편함을 섬세한 시선으로 다카세 준코는 포착해낸다. 남편이 목욕을 하지 않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소설에 있다. 


여름의 시간은 땀을 흘리고 물을 마시고 씻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전기세와 수도세 걱정은 하지 않는다. 원할 때 씻고 더울 때 에어컨을 틀며 지낸다. 쉬는 날에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찾아서 버린다. 해진 옷과 속옷 역시 찾아서 버린다. 혼자 했다가 같이 하자는 말을 들었다. 『샤워』의 결말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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