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여름의 문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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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언어는 통하잖아요? 그런데 말이 통하는 일은 실은 별로 없어요. 같은 언어를 써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대개의 문제는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언어는 통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사는 거지요.

'세계의 거의 누구하고도 친구는 되지 못한다'-누가 한 말이었는지 이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통하는 세계-누군가의 언어를 귀담아듣고, 지금부터 하려는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그런 세계를 발견하는 일, 만나는 일은 무척 만만찮고 수고스러워서, 거의 운 아닐까 싶어요. ……"

(가와카미 미에코, 『여름의 문』中에서)



가와카미 미에코의 『여름의 문』을 읽는 한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용하고 정적이고 고즈넉한 나의 세계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건너갔다. 소설의 제목대로 여름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문을 열기까지 무수한 생각과 망설임이 있었다. 과연 내가 실행할 수 있을까, 머뭇거림도. 생각과 망설임, 머뭇거림을 받아들이며 나는 문을 열고 나아갔다. 


문을 열었더니 그곳엔 눈이 부실 정도의 반짝이는 마음과 사랑이 있었다. 내가 내 마음을 모른척하는 동안 그곳에서는 열심히 부지런히 근면하게 사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사랑을 하며 사랑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여름의 문』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일본 소설 중에 가장 아프면서 행복한 소설이 될 듯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그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알고 싶을 땐 창문이 몇 개 있는 집에서 자랐는지 묻는 게 제일 효율적이다.'


어찌 이 문장을 읽고 소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가난, 기침, 사랑' 유년 시절부터 가져온 가난의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숨길 수가 없다. 기침은 당연하고. 사랑은. 역시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여름의 문』에서 가난은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조용히 나긋하게. 그러나 존재감은 확실하게. 여름을 뜻하는 한자가 이름에 두 개나 들어가는 나쓰메 나쓰코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나쓰메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지금은 그런 열망과 마음만 가지고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쿄에서의 삶을 유지한다. 아버지는 일찍 집을 떠났고 엄마와 할머니, 언니와 살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일찍 죽고 언니가 가장 역할을 했다. 나쓰메의 유년은 가난과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다는 건 암울하지만 나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다. 나쓰메는 일부러 씩씩하게 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있지 못함에도 써야겠다는 마음이면 된다며 생활한다. 


언니와 조카가 나쓰메의 집을 방문하는 여름에서 10년 후의 여름으로 소설은 시간과 장소를 이동한다. 그 사이에 나쓰메는 소설가가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현실의 나는 아니지만 못하지만 소설 속 누군가는 꿈을 이룬다니. 그런 모습을 보려고 소설을 책을 읽는다. 10년 전의 여름의 나는 비록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10년 후의 여름의 나는 달라져 있다는 것. 『여름의 문』의 세계는 찬란한 비애로 가득하지만 마지막은 사랑으로 남는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나는 말이 통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말을 하다가 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건 체념이었다. 화가 나도 입을 다물었다. 나쓰메는 언어가 통하더라도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아챈 센가와 씨가 떠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여름의 문』은 잔잔히 흘러가다가 긴 파도를 선사한다. 파도는 모래사장과 집을 덮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름의 이름을 가진 나쓰메의 내일을 조용히 응원하는 이유는 나의 여름의 내일도 응원받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 사랑하며 살기를. 모두 여름 안에서 수박을 먹으며 지내기를. 모두 가을을 기다리는 일로 그렇게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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