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헝거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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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나는 출근하기 전 잠깐 앉아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한갓진 틈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튜브의 위대한 알고리즘은 EBS의 <위대한 수업-록산 게이>편을 띄워주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록산 게이는 근사하고 멋져 보였다. 웃진 않았지만 그 내면에서는 환한 미소가 느껴졌다. 짧게 축약된 요약본이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영상에서 자신의 책 『헝거』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자신은 운동을 싫어하지만 헬스장에 가야 했고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갔지만 폭력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일화였다. 책을 사서 읽고 싶었지만 품절이었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책이 출간되었다.  『헝거』는 슬픔으로 압도했다가 작은 낙관으로 끝을 맺는 책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로 시작하는 『헝거』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도 체중 감량의 성공 사례도 다루지 않는다고 밝힌다. 자신이 가장 살이 쪘을 때가 키 196센티미터에 몸무게 216킬로그램이었다고도. 여러 종류의 몸에 관한 에세이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는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헝거』처럼 무지막지하게 슬프고 진실한 책은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자기만의 이야기'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거짓말 어느 정도의 꾸밈 어느 정도의 가공된 편집이 있기 마련이다. 숨기고 가리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던 책들은 『헝거』에 사과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토록 거대한 몸이 되기까지 다시 말하면 상처받은 몸으로 자신을 몰아가기까지의 진실은 끔찍했다. 


나는 한 번도 나의 몸이 만족스럽거나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부족해서 채우고 싶고 과해서 비워내고 싶다. 이토록 잦은 불안과 불만 사이에서 내 몸을 바라본다. 살이 찔까 봐 먹고 싶은데도 음식을 깨작거리는 내가 싫다. 몸이 싫은 게 아니라 나를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나 자신을 혐오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책을 찾아 읽는다. 작년보다 살이 찌고 있는 나에게 도저히 괜찮다고 해줄 수 없기에. 


『헝거』에서 록산 게이는 공간을 차지하는 자신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싫었다고 말한다. 다정한 부모님은 그녀가 살이 찌기 시작하자 걱정하고 온갖 다이어트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계단이 없는 행사 무대에 오르는 것 의자가 부서질까 봐 두 시간 넘게 스쿼트 자세를 유지했던 것. 비행기 비상구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앉을 자격이 없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단지 뚱뚱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다. 흑인 여성이라는 점도 추가된다. 사건이 있었고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음식을 먹어 몸을 요새화 했다. 감옥으로 만든 것이다. 트라우마에서 도망가고자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증거는 거대한 몸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번 도망가기만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처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자신도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적어도 나의 일부는 내 인생 최악의 날들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런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록산 게이, 『헝거』中에서)



나는 이해가 더딘 편이라 쉽게 말하는 사람이 좋고 쉽게 쓰인 책이 좋다. 『헝거』는 두 가지를 다 갖춘 책이다. 쉽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쉽게 쓸 줄도 안다. 어떤 날의 아침에서 본 록산 게이의 편안한 목소리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이제부터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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