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수빈이가 되고 싶어 안전가옥 쇼-트 28
청예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내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장래희망 같은 걸 적어 내야 했던 때에도 어디서 주워들은 어른들의 말을 빌려 의사, 선생님, 박사 이딴 걸로 희망을 대체했다. 내일이나 모레 아주 먼 장래 정도는 당연히 나에게 주어지리라 믿었다. 어리석고 불완전하고 미숙했다고 여긴다. 죽음을 실재하지 못했다. 이별이란 연락이 오지 않아 만날 수 없는 정도의 슬픈 기분이었다. 열다섯의 나는. 


길모퉁이의 작은방이었다. 브랜드 교복을 사지 못해 속상했겠지. 집에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이가 없어 울적했겠지. 하는 수없이 공부를 했다. 비행 청소년이 되는 일에도 재능이 없었다. 청예의 신작 소설 『수빈이가 되고 싶어』의 두 주인공 여름과 겨울은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질투와 시기, 미움이라는 감정을 적립해간다. 열다섯의 그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름과 겨울은 영화 〈 A 프로젝트〉의 주인공 자리를 놓고 선의의 아니 무한 경쟁을 벌인다. 애초에 주인공은 오수빈이었다. 원 톱 아역 배우 수빈에게 주인공을 주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이름도 수빈으로 정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수빈이 하차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름과 겨울은 치열한 오디션을 본다. 여름은 연기가 되고 겨울은 얼굴이 된다. 


어른들은 말씀하셨지. 학교 가면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는 덤. 『수빈이가 되고 싶어』는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북반구의 여름은 남반구의 겨울. 두 계절은 서로를 의식할 뿐 만나지 못한다. 대척점에 서 있는 두 계절의 모습으로 여름과 겨울의 열다섯의 시간은 폭발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꿈을 꾸는 그들은 이해, 배려, 공감, 존중이라는 교과서적인 가치는 과감히 던져 버린다. 미움, 증오, 분노, 고통의 현실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낱낱이 드러낸다. 심지어 망설이지도 않는다. 솔직한 너무나도 솔직하고 순수한 악이라서 서로를 향한 그들의 감정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제 열다섯들은 그런 얼굴로 살아내고 있는 걸까. 너를 밟고 내가 올라가겠다는 마음이 기본이 된 채 말이다. 양보는 개나 줘버려. 


나의 열다섯은 누구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미워할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겠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나를 한심해 하는 걸 선택했다. 후에 이런 선택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을 미워했다면 덜 아플 수 있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아프지 않을 순 없었겠지. 『수빈이가 되고 싶어』는 너는 누구도 아닌 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여름과 겨울은 상대의 모습에서 궁극의 나를 발견한다. 


여름이가 되고 싶어. 겨울이가 되고 싶어.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직역처럼 너의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듣는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한 채 불완전의 시절을 건너와야 한다. 네가 불러주는 나의 이름이 꿈이 되어야 한다. 괜찮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다가올 미래에 희망한다. 그럼에도 할 말은 하는 할머니가 되는 나의 장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