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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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의 신간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의 표지를 쓰다듬는 저녁이다. 아주 오래전에 모았던 편지지 재질이다. 약간의 오돌토돌함. 약간의 까끌까글함. 미약한 보드라움. 미약한 쓸쓸함. 책을 읽고 나서일까. 표지만 만지고 있는데도 다채로운 기분과 감정이 든다. 지난밤은 책을 읽고 오늘 밤은 책을 어루만진다. 『마은의 가게』속 세계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 책을 홀랑 읽어버린 내가 조금 밉다. 천천히 아껴 읽을걸. 하지만 『마은의 가게』를 읽으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빨리 자야 하는데도 주인공 마은과 보영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그런 단호함과 결연함이 내게는 없다. 나의 공마은이었다가 우리의 공마은이 되는 이토록 슬프고 다정한 마은의 세계. 연극을 했다가 학원 강사를 했다가 먹고 살 게 없는 서른일곱에 마은은 카페를 연다. 자본금은 이천만 원. 추가 여유 자금은 칠백만 원. 도합 이천칠백만 원으로 자영업자가 되기로 한다. 이게 될까. 의문이 들지만 마은은 해내고야 만다. 


권리금 없는 가게를 찾아냈고 공사비를 아끼는 방향으로. 마은은 잠깐 망설이고 주저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가게를 연다. 자신의 이름을 딴 '마은의 가게'는 마은에게 일터이자 집이 된다. 나의 원픽 작가 이서수는 계속 계속 나를 울리고 위로한다. 마은이 나 같아서. 나 같은 마은이어서.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혹시 아시는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이서수를 검색한다는 것. 시간이 나면 신간 목록을 훑고 시간이 없으면 냅다 이서수를 친다. 그래야 하루가 좋은 쪽으로 완성된다. 이 같은 행위는 제발 오래 소설을 써주세요. 언제든 구매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기도 의식이다.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두려움과 자괴감'을 그리고 싶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한동안 마은은 자신의 가게에서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여자라서 애인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마은은 낯선 이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주눅이 들어서 마은은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한다. 『마은의 가게』는 호러와 서스펜스를 넘나든다. 일상 공포란 이런 것이다를 『마은의 가게』는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주 오해한다. 싸우고 얼굴 붉히기 싫어서 참는 건데 그런 나를 쉽고 우습게 본다. 


아무 말 안 하니까 이렇게 해도 되겠지. 선을 넘는다. 음 그럴 땐 일단 참는다. 좀 많이 참는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마은 역시 그렇게 한다. 첫 가게이고 망하게 하고 싶지 않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으이구 바보 같아 할지라도 마은은 참는다. 계속 마은이 참고 인내하고 견뎠으면 진짜 아주 많이 속상했을 것 같다. 현실의 내가 나를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소설 속 당신이 이겨내는 모습은 보고 싶거든요. 


마은의 승리는 나의 승리.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초반의 마은은 조금씩 자신에게 소화제를 투입한다. 후반부에서 마은은 시원하게 트림을 하며 회심의 멘트를 날린다. 좋았어, 잘하고 있어 공마은! 응원봉을 들고 공마은을 외친다. 나도 그럴 수 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단숨에 급소를 파고드는 말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내공을 『마은의 가게』에서 얻어 간다. 그런데도 나 오늘 구질구질하게 길고도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의 반복을 했단 말이지. 


괜찮아. 


주눅 들어도 유창하게 말하지 못해도.


너의 언어로 할 말은 하는 너이기에. 


오늘도 고생했어. 내일은 조금만 고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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