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 은근한 차별에 맞서는 생각하는 여자들의 속 시원한 반격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지음, 김지유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보다는 덜 더하다. 괜찮은 사람인 척 보이려고 했던 행동은 집에 돌아와 누우면 이불킥 하기에 좋은 것이었다. 괜히 말했구나. 괜히 그 대화에 끼어들었구나. 스스로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 된다는 건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 


나의 혐오가 쩔던 시절을 지나 어떤 일에도 반응하지 않는 무던한 시간을 살고 있다, 고 꼭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한 번씩 저 인간 왜 저러나 이중성 장난 아니네 생각은 한다. 일을 해서 그렇다. 모든 게 일 때문이다. 내가 분노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하는 이유는 일 때문이다고 탓을 하면 쉽다. 지금은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타라-루이제 비트베어의 책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는 어쩔 수 없이 노동하는 나의 손등을 찰싹 때리는 책이다. 


너 그러면 안 된다. 너의 그런 말이 여성혐오인지 몰랐지. 여성인 나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타라는 말해준다. 여성혐오는 선의의 조언이나 칭찬인 양 행세하기도 하는데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고방식과 관념에 길들여져서 그런 것이다고. 정말 정말 몰랐다. 나의 그런 말이 상대의 행동을 추켜세우기 위한 말이 여성혐오였다니. 이래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의 특별함은 쉽게 쓰여서 계속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례 연구와 논문 인용이 아닌 작가 타라-루이제 비트베어의 인생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과의 만남에서 있었던 타라의 특별한 경험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통쾌하다. 책 속 곳곳에 유머가 포진되어 있다. 맞아. 유머와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여성을 대하는 부정적인 인식과 프레임을 입히는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문제점도 유머와 위트로 혼내준다. 


남성이 여성에게 설명과 조언, 가르침이라는 맨스플레인을 겪어본 적 아니 당해본 적이 있는지. 무수히 많겠지.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네 그렇군요 말한다. 대화를 질문으로 시작하는 방식이 진절머리 난다. 질문했는데 내가 정답을 말하면 갑분싸가 되지만 어쩌냐 나는 답을 알고 있는 것을. 심지어 나는 그 분야를 가르치기도 했단 말이다.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의 세계와 책을 읽는 우리의 세계가 교집합처럼 만난다. 


새로운 용어도 알게 되었다. 픽미 걸, 베이직 걸, 인셀, 알파메일, 전 여친 미친년. 가해자에게 공감해 주는 심리는 어느 나라나 똑같구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독일도 그렇다면 전 세계가 그렇다는 거다. 일의 특성상이라고 말해버리면 편하겠지만 내가 일하는 곳 역시 남자들의 비율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도대체 왜 여성들과는 유대나 연대가 되지 않을까. 여적여는 분명 아니다. 여성/남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먼저 생각한다.


성별로 나눠서 바라보는 게 아닌 먼저 인간으로서의 괜찮음을 보게 된다. 핑거프린스와 핑거 프린세스가 도처에서 활약하고 있으니 성실한 바보는 더 많은 일을 한다. 반성한다.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를 읽었으니까 칭찬인양했던 여성혐오의 말은 이제 하지 않기로.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이 아닌 인간이 있을 뿐이다. 전 여친 미친년의 신화에서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전 남친 미친놈의 신화도 있다면 그것 역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