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이사구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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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같은 말이 있겠다. 너에게 기회를 줄게. 그러니 한 번 변해봐. 개과천선의 실사판을 보여줘. 어디 보자 하지만 돌아오는 건 혹시나가 역시나 같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그렇다는 거다. 게으름뱅이에서 부지런한 나로 변신해 보겠어, 결심하고 또 결심. 작심삼일은 개뿔. 하루 정도 다르게 살아보고 안 되겠네 누워 있는 꼴이라니. 


인과 관계나 계기도 없이 사람이 변한다? 지랄맞은 성격 대신 온화한 표정으로 세상만사에 달관한 자세로 착해졌다? 드라마 《악귀》와 이사구의 연작 소설집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의 세계관에 입각하면 그이는 귀신이 들린 거다. 것도 지독한 악귀에 빙의 된 것이다.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어른들은 말하지. 왜 저러지? 죽을 때가 된 건가?


맞다. 맞아.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는데 그게 살아 있는 건가. 죽은 자나 다름없다. 그러니 조심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말을 걸어온다면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를 교본 삼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하나. 직장에서 사내연애가 빈번한 이유는 죄다 미친 인간인데 그중에 한 명이 나에게 정상적으로 대해준다? 그러면 바로 사빠 되는 거지.(사랑에 빠지는 거.)


그저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을 뿐인데. 몇 번을 물어봐도 화를 내지 않았을 뿐인데. 인류애가 충전된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는 직장인의 슬픔을 오컬트적인 요소로 풀어낸다. IT 기업의 디자이너 김하용이 주인공이다. 벽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의 하용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유튜브에서 부적 쓰는 법을 검색한다. 디자이너의 재능을 부적 그리기에 낭비하는 하용에게 판타스틱 어드벤처 호러 무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직장 상사가 이상하다'로 시작하는 표제작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는 슬프고 웃기고 짠하고 기괴하다. 소설 한 편에 이토록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욱여 놓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네 그려. 첫 문장을 읽고 어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뻔한 문장인데. 이상하지 않은 직장 상사가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하용의 직장 상사는 이상해졌다. 디자인팀 팀장인데 디자인을 못하는 한 팀장이 요즘 착해지고 순하게 행동한다. 


어렸을 때 읽은 전래동화에는 도깨비, 여인으로 둔갑한 구렁이,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들이 등장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했다가 정체를 드러내는 귀신들. 주로 산이나 빈 집, 어두운 밤길에 등장해 인간을 놀래켰다. 바쁘다 바쁜 현대 사회에는 직장에 출몰한다. 귀신들이. 것도 진짜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귀신인지 아닌지 모를 감쪽같은 모습으로 일도 하고 점심도 먹고 월급도 받아 간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그만큼 직장이란 곳이 힘들고 무서운 장소가 되었다. 귀신들과 일을 하고 있다니. 그러면 이해가 된다. 저 이의 미친 짓거리가. 귀신도 보통 귀신이 아닌 악귀가 들려서 저러니 퇴마 의식을 해야겠지.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 무당언니에게 의뢰를 해야 한다. 웃긴 이야기 하나 할까. 귀신을 본다는 사람이 있다. 부엌 싱크대에서 자기를 보고 욕을 하고 자고 있으면 옆에 와서 또 욕을 한단다, 귀신이. 


어디까지 진지하게 받아줘야 할지. 대꾸는 해야겠고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게 다 일을 해서 그래. 내가 때려치우고 개인 사업자든 뭐든 해야겠는데 흑흑. 잠깐 눈물 좀 닦고. 미친 소리를 들어도 진짜 미친 게 아닐까 의심되는 인간들과 지내야 하는 게 내가 배운 게 이것뿐이라.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를 쓰기까지 소설가 이사구의 직장 생활이 어떠했을지 안 봐도 소설. 하용과 명일(무당언니의 본명)의 악귀 퇴마기는 이사구의 직장 생활이 계속되는 한 시리즈물로 이어질 것 같은 속상하지만 기쁜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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