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 목숨 걸지도 때려치우지도 않고,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기
황선우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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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좋아하고 아끼는 감정은 이제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대뜸 단박에 기습적으로 미움이 생겨버린다. 미워할 구실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데 밉고 또 밉다. 미움은 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아무래도 이 미움은 일을 하기 때문에 발생된다는 과학적 추측이 가능하다. 일이 아니면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농담을 주고받으며 좋은 사람인 척 굴 수 있을 텐데. 


마음속 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속으로 온갖 욕과 조언과 충고를 가장한 잔소리를 하고 있어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앙 입을 다물고 귀여운 걸 떠올려야 한다. 열에 아홉은 참고 있다가도 진짜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 마는데 대나무숲이 절실해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너 진짜 이딴 식으로 할 거냐. 가마니는 아니지만 가마니가 되고 싶기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예전에 그딴 식으로 굴었다. 거울 치료 당하고 있는 거지 뭐. 


반성에 반성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제일 잘한 일은 도시락으로 싸갈 김치볶음밥을 만든 거다. 몇 년째 책상에 앉아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다. 고행 내지는 수행 같은 거라고 나 자신을 설득한다. 이렇게 몇 년만 수련을 하면 세상을 구할 비기를 터득할 수 있다는. 오늘 점심도 김볶을 먹었냐고 해서 넵 했더니 사장이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비아냥인지 감탄인지 모를 허나 1초만 생각해도 당연히 전자이겠지만) 하더다.  


진짜 정말 완전 회사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맛있는 건 집에서 나 혼자 예능 보면서 먹고 싶다고. 무얼 먹으러 가자 거나 함께 먹자고(동어반복인가. 아무튼 나를 잊어주세요. 점심시간에는.) 권하지 마. 황선우의 에세이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는 일하면서 느껴야 했던 정체불명의 감정들에 이름을 달아준다. 일하다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거나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한숨을 쉬거나 부탁무새로서 넵과 넵넵과 앗넵과 네로 다양한 네의 변형으로 상황을 돌려 막는 바보 인간의 나를 안아준다. 


그나마 내가 쫓겨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통해서 알았다. '구단의 목표를 구상할 때 강두기의 실력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취급받는다. 그가 15승은 거둔다는 가정하에 다른 전략들이 논의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있으니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단단한 신뢰를 받으며 일한다는 것, 떠날 때 빈자리를 모두가 큰 상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는 더 이상 이불 찰 일만 안 만들기를 바란다.' 내가 실력이 있다는 건 아니고 나의 능력은 상수로서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꾸준하다는 능력. 어떨 땐 잘하고 어떨 땐 못하는 게 아닌 꾸준히 그럭저럭 다른 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군말 없이 하는 능력.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청소일 같은 업무를 해낼 사람이 없어 상실로 다가오겠지. 청소부 한 명을 잃어버렸구나.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황선우는 '너무 크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그러니까 나에게 말이다. 자주 미움이 생겨나 가시 돋친 말을 생각하다가 결국엔 해버리고야 마는 한심한 두심한 나에게. 


열심히만 하고 잘하지 못하는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일못러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는 큰언니의 얼굴로 다가온다. 목숨 걸지 말고 때려치우지도 말자고. 제일 중요한 건 아프지 말아야 해. 몇 년째 김볶을 먹지도 않은 큰언니 황선우는 어떻게 세상이 아닌 나를 구할 비기를 알아냈을까.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평생 김볶만을 먹어야 한다. 좋은 걸 떠올려본다. 떠, 올, 려, 본, 다. 생, 각, 이, 잘. 아, 월급! 무조건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네. 용기 따위 내지 않아도 사랑해, 월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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