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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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화장을 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을 하고 밥을 챙겨 먹고 필요 물품들을 챙겨서 출근을 한다는 것이니까. 나는 시도도 하지 못할 눈 위에 아이라인의 각도까지도 완벽하다. 그에 반해 나는 어떤가. 겨우 눈을 뜨고 씻고 스킨, 로션, 크림, 선크림까지가 얼굴 치장의 전부이다. 머리도 물기만 털어낼 뿐 제대로 말리지 않는다. 빗질도 하지 않는다. 


겉옷은 검은색 롱패딩과, 카키색 야상 점퍼를 돌려 입는다. 출근을 하면 나만의 유니폼 몇 년 전에 만 오천 원을 주고 산 바람막이를 몸에 장착한다. 검은색은 얼마나 관대한 색인가. 온갖 이물질이 묻어도 다정하게 품어준다. 괜찮아 모두 내게로 오라 하는 듯이. 아무도 내게 옷과 얼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지금, 행복한가.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대신 내가 나를 검열하고 다그친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일. 숫자를 보면서 우울해지고 화가 나지만 이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체중계 중독에 걸린 것일까. 근 10년 넘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괜찮은 걸까. 냉정하게 말하면 몸무게 강박이다. 운동은 하지 않고 먹는 것만 약간 조절할 뿐이다. 밥을 많이 안 먹는 대신 간식은 엄청 때려 먹는데 다이어트 맞나 싶을 정도이다. 


다시 냉정하고 사실에 입각해 말하자면 나는 못생겼다. 키가 작고 팔다리는 짧고 허벅지는 굵고 배가 나왔다. 다이어트와 요요 사이에서 방황 중인 한심한 중생이다. 과체중에서 정상 몸무게로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시 뚱뚱이 시절로 돌아갈까 무섭다. 그때의 기억이 박혀 있어서인지 옷을 크게 입는다. 배와 허벅지를 가리기 위해. 남성복의 크고 넉넉한 사이즈가 좋다. 운동복을 사러 갔는데 크롭 티를 추천받아서 기겁하고 나왔다.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나처럼 외모 강박, 신체 혐오를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례로 다룬다. 책 표지에 쓰인 '오늘 거울 속 내가 별로여서 약속을 취소했습니다.'라는 문장은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현시대의 여성의 일상을 대변한다. 늘 내가 별로이기 때문에 약속 자체를 잡지 않지만 가끔은 오늘 무얼 입고 갈까 고민은 한다. 어차피 검은색 유니폼으로 무장하겠지만. 


꾸밈 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 몸을 작게 만들고 싶은 강박에 지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먹지 않아도 살이 빠졌지만 이제는 먹지 않는데도 몸무게가 늘고 있다. 왜 이럴까, 나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서 말이다. 그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 


말라야 하고 예뻐야 한다. 특별한 자리가 있으면 남성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옷차림을 강요받는다. 완전 뚱뚱이는 아니었는데도 나는 누구에 비해 살이 쪘다는 소리를 계속 들었다. 딱 맞는 옷을 입지 못한 이유는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이리라.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말한다. 우리의 몸을 심미적인 것보다 기능적인 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손이 있어서 글을 쓸 수 있고 다리가 있어서 뛸 수 있다. 


거울 앞에서 시선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거울 속 나 자신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아갈 나의 건강한 몸을 응시해야 한다. 어떻게 생긴 게 문제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가져온 생각을 단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몸무게를 재고 우울해하면서 지낼 것이다. 그래도 알아냈다. 더 말라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를. 울퉁불퉁한 허벅지를 꼬집는 대신 걸을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쓰다듬어 줄 것이다. 이제는. 


인상적인 부분.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은 신체 자신감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메세지를 받는다. 네 몸을 사랑해! 하지만 너무 사랑해선 안 돼. 자신감을 가져! 하지만 겸손해야 해. 마음속으로 편안함을 느껴!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걸 드러내서는 안 돼. 우리는 신체 자신감을 설파하면서도 자신의 외모를 좋아하는 여성을 거만하고 심지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기준 탓에 여성은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색하게 여긴다. 이는 외모 강박의 대책으로써 여성에게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런 이중 잣대로 인해 여성은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여성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비하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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