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살인자의 쇼핑목록 네오픽션 ON시리즈 2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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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소설집 『살인자의 쇼핑목록』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일곱 편의 소설은 읽기 힘들 수도 있겠다. 집중력을 도둑맞은 시대에 일곱 편이 웬 말이냐고 또 할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시대를 탓하는 건 아니고 집중력은 예나 지금이나 도둑을 맞았든지 빼앗겼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양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산만함과 어수선함을 긍정하기로 했다. 


영상의 길이가 3분이 넘어가면 스크롤을 내리는 도파민 중독 시대에(무조건 시대 탓으로 돌리는 거 은근 재밌다는)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작가가 집중력을 주입해 주면서 소설을 읽게 만든다. 잠깐 멈춰 놓은 유튜브 영상 봐야지 하는 생각을 잊을 수 있다. 마트 캐셔로서 사람들의 쇼핑 목록의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부터 사라진 제자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교수, 길에서 살다 구조된 길고양이, 게임에 빠지게 된 사람들까지 소설은 다양한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지루한 설명이나 묘사 없이 상황을 전개하고 끌고 간다. 짧은 분량 안에 다채로운 사건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다. 찾아보니 표제작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또 나만 모르고 있었지. 이 재미난걸. 뒤늦게 알아서 좋은 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한 권씩 읽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전작을 읽는 쏠쏠한 재미. 


전생이란 존재할까. 「용서」는 전생의 기억을 안고 다시 태어난 아기가 화자로 등장한다. 갓난아기 일 때의 기억이 없다는 걸 소재로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전생을 떠올리면서 현생을 새롭게 살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실린 「각시」는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들의 트라우마를 일깨운다. 증조할머니가 병상에서 들려준 작은아버지의 이야기는 과학과 상식으로 설명 하기 힘든 전염병의 진원을 토속의 의미로 해석해낸다. 


매 순간과 일상이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지루하고 힘들고 슬프고 아프다. 최근에 메일로 온 우시사(문학동네에서 메일로 보내주는 우리는 시를 사랑해)의 첫 문장(무려 배우 박정민이 써서 보내준) '그간 별일 많으셨죠? 모쪼록 조금만 아프셨길 바랍니다. '를 읽으며 가슴이 뻐근했다. 사람들이 아프고 힘들게 살고 있으리라는 걸 기본값으로 염두에 두고 쓴 문장이라서 말이다. 


아프지만 모쪼록 조금만 아프셨길 바란다니.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자만이 받아낼 수 있는 위로이다. 강지영이라는 페이지 터너를 알게 되어 낮의 분노를 밤의 읽기로 상계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읽을 것도 볼 것도 많아서 일하는 고통을 조금은 잊을 수 있다는 게 최근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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