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살인자의 쇼핑몰 - 강지영 장편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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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부터는 책 많이 읽고 매일 글쓰기, 영어와 한자 공부를 할 거라는 마음에 춘식이 갓생 타이머 주문해놓고 새 공책도 책상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갓생을 살지 못하는 건 아직 춘식이 타이머가 오지 않은 탓이니 빨리 와라 와라 해놓고 정작 물건이 왔지만 또 책상에 놓아두기만 한 채 1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갓생 대신 걍생으로.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라지만 어째 나만 바쁜 거 같고 일은 해내도 쳐내도 계속 쌓인다. 책을 읽지 못한지 오래라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하면서도 몸이 피곤하니 집에 돌아와 기절하듯 잠을 잤다. 다시 힘을 내어 책을 읽었다. 책읽기도 힘이 든다는 걸 근래에 깨달았다. 책은 그저 읽고 싶을 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숨쉬듯 책을 읽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숨을 쉬는 것에도 감사할 지경으로 체력이 바닥났다.


다양한 장르에 책을 읽어보겠다고 책을 사 놓았지만 역시 내가 한달음에 읽고 몰입할 수 있는 건 소설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되는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 살인자의 쇼핑몰을 앉은 자리 아니 누운 자리에서 해치워버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자세도 안 바꾸고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완독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꼈다. 


강지영의 『살인자의 쇼핑몰』은 '돌이켜보니 삼촌은 이상한 사람이었다'라는 흥미로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임 없이 이야기로 직진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첫 문장부터 끌렸다. 돌이켜보니라는 과거형으로 시작한다면 현재 삼촌의 안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리라. 삼촌 정진만은 노안이고 일찍이 도박을 배우러 다녔다. 고등학교 진학을 한 달 앞둔 날 집을 떠나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전적이 있다. 


정지안은 정진만과의 어떤 하루를 회상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둘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집에 남아 잘 기억해, 잘 들어로 시작하는 삼촌의 이야기들. 무는 개, 검은 개들의 나열 방심하다간 식탐, 거짓말, 도둑질과 같은 이름의 개들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죽었지만 슬퍼하는 대신 검은 개가 가장 아끼는 걸 빼앗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삼촌의 말은 오늘로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안은 삼촌의 부고를 듣는다. 삼촌이 자신의 집 욕조에서 자살을 한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지안의 삶은 이상하고 무섭고 잔인하게 흘러간다. 『살인자의 쇼핑몰』은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이렇게라는 건 감정 과잉의 대사, 사연팔이, 이야기를 에둘러가려는 휴식 같은 호흡 없이라는 것이다. 독자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니까 질질 끌지 말고 상황 설명과 배후를 밝혀야 한다. 


부모 대신이었던 삼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줄 꿈에도 몰랐던 지안은 삼촌이 남긴 유산의 비밀을 알아간다. 그럴수록 지안의 안전은 위협받는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잘 들어, 정지안으로 시작했던 살아생전 삼촌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살인자의 쇼핑몰』은 무의미한 의미 찾기를 하는 것보다 읽는 재미로 독자를 압도한다. 설마와 진짜 사이에서 준비한 반전은 묘한 안심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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