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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 케어 보험
이희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2023년에 읽은 마지막 책은 이희영의 『BU 케어 보험』이다. 이희영의 작가의 전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뜻깊게 읽었기에 신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는 부지런하게 책을 세상에 내놓았고 기다림에 찬 독자는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펼쳐도 모험과 흥미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이희영 작가의 작품은.
다들 보험 하나씩은 들었을 것이다. 먼 훗날 어떤 날에 닥칠지 모를 불행에 대비하자는 마음으로. 보험이란 게 불행을 담보로 하는지라 거부감이 있었다. 아프면 그냥 죽자는 마음에. 수익자를 누구로 해 놓아야 할지 난감한 마음 더불어. 몇 번 들었다가 해약하기도 했다. 지금은 단 두 개만 남겨 두었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보험이라 지금은 그 같은 보장을 들 수 없다고 하기에 자동이체를 걸어 두고 통신비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의 내가. 제가 지금 아프니 서류를 첨부합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용도로 말이다. 안전 이별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별 앞에 안전을 붙이게 된 세상이라니. 정말 지구 대종말이 멀지 않았나 보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회자정리라는 성어를 집 안 곳곳에 걸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이별은 공포가 되어 버렸다.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대낮에 염산, 칼부림, 집 앞에서 기다리기 같은 행위로 돌아오고 있다.
이희영은 『BU 케어 보험』이라는 다소 독특하고 낯선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조리원에서 만난 네 명의 엄마는 보험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험 상품 설명만 들어도 커피 쿠폰을 준다는 말에 이끌려서. 직원이 설명하는 보험의 형태는 이렇다. 먼 훗날 성장한 자녀에게 이별 상황이 닥치면 자료를 토대로 케어 서비스를 해준다는 것이다.
암 보험, 실비 보험, 치아 보험은 들어 봤어도 이별 보험이라니. 몸이 아닌 마음에 병이 났을 때 케어 서비스를 해준단다. 시간이 흐르고 네 명의 엄마가 낳은 자녀들은 어른이 된다. 그들 자녀는 각자의 사정으로 사랑 후 이별을 경험한다. BUC라고 하는 브레이크 업 컨설턴트, 이별 전문 상담가가 찾아간다. 말이 좋아 환승 연애지 내리지도 않고 다음 역으로 건너가버리는 얌체족부터 스토킹을 하면서 사랑이라고 울부짖는 인간을 상대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다양한 보험을 들 것이다. 그중에 안전한 이별을 위한 보험도 있으면 어떨까 하는 기발한 상상으로 『BU 케어 보험』은 쓰였다. 이별 후의 마음을 살펴주는 보험이라니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소설의 세계로 들어와 현실이 된다.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아 방치해놓기 쉽다. 시간이 흘렀으니 나았겠지. 안심해버리곤 한다. 어느 날 마음은 무너진다. 마음이라는 게 없어진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곳에 없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음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커피 두 잔도 안 되는 비용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만기 환급은 되지 않지만 만기 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따로 있다고 하니 가입서 얼른 주세요. 이별 전문 상담가를 만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이런 보험의 혜택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이별이 무섭지 않을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