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으로
홍인혜 지음 / 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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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행기를 읽던 때가 있었다. 서점에 가면 여행 코너에 가서 알록달록한 여행 사진이 들어 있는 책을 고르는 재미로 하루를 넘기던 시절이.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고 책을 읽으며 세계를 누볐다. 그야말로 내 방 여행자 다운 포즈로. 그래도 좋았다. 떠나지 않아도. 책만 펼치면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주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때로부터 지금. 여전하다. 책보다는 유튜브 영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만든 영상으로 여행 욕구를 충족한다. 그래도 좋다. 아직은 내가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언젠가 준비를 하고 계획을 짜고 실행을 하겠지. 위로 대신 괜찮고 할 수 있어 순수 100%의 응원을 미래의 나에게 타전한다. 홍인혜의 에세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를 읽고는 더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프롤로그부터 압도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선택권은 없는 회사원의 일상 스케치. 야근을 하고 말이 없는 기사님이 모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느낀 허탈한 감정의 끝에는 그래 어디로든 떠나자였다. 내내 지배했겠지. 지긋지긋하고 지겹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모든 걸 훌훌 버리고 떠나자의 마음이. 라이터 불만 갖다 되어도 발화점이 치솟아 타오를 것 같은 마음이. 


그렇게 루나는 떠날 준비를 한다. 위기의 청년들이 품고 있는 꿈의 나라. 루나의 삼포는 영국이었다. 날씨의 요정이 심술을 부리곤 한다는. 악명 높은 날씨의 대명사. 영국은 루나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라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는 겸손하고 공손한 예의를 전하는 책이다. 숱한 여행기를 읽어본 나로서는 젠체하지 않고 뻐기지 않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의 어조가 좋았다. 


내가 여기 머무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루나 역시 그런 부분을 짚는다. 잘나서도 똑똑해서도 아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기에 떠났노라고. 대단한 자신이 아니다. 일상의 피곤과 권태를 지금 벗어나야 하는 마음으로 떠난 것이다. 영국으로 가서도 포기하고 두고 온 것에서도 미련을 숨기지 않는다. 


꿈의 나라에 갔지만 만만치 않은 일상의 연속이다. 짠돌이 집주인을 만나 황당을 넘어 공포를 느껴야 했던 초반에서 마음에 드는 펍과 미술관, 박물관을 다닌 중반을 지나 본격적으로 낯선 곳에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후반부까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는 여행기 겸 자기 계발서 겸 명상서로도 읽을 수 있는 종합 서적이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사진과 만화는 덤이다. 


오늘도 나는 방에 빛이 들게끔 창문 하나를 열어 놓고 책을 읽는다. 작고 소중한 나의 우주. 주말에 맞춰 방을 꾸미기 위해 이럴 때만 똑똑하게 작용하는 머리를 굴려 주문했지만 물류센터에 잔류해 물건이 오지 않아 똑땅한 마음을 책을 읽으며 달랜다. 돌아다닐 에너지는 없지만 누워서 손가락 움직일 에너지 정도는 가지고 있기에 즐거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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