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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창신동 여자 ㅣ 위픽
최현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평점 :
그런 날이 있었다. 어떤 눈빛을 일별하고 내내 잊히지 않는. 더 나아가서 단 한마디였는데 평생 기억에 남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도 전두엽에서 파업 선언하듯 토해내는 눈빛과 한마디를 가지고 살아간다. 단순하게 생각해. 그냥 놓아줘. 이런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로 인한 것 같은 그때의 상황을 이고 지고 걸어가야 한다.
최현숙의 소설 『창신동 여자』는 처음 만난 여자의 눈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러 간 가정에서 만난 여자. 가족도 아니면서 남자 노인을 보살피고 있는 여자. 살아온 내력을 묻는 것조차 실례가 되지 않을까. 아니 물어보는 걸로 사교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맞지 않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여자.
주인공 한정희는 첫 시작부터 이상하게 꼬인 만남을 복기한다. 돌봐야 할 노인은 지명수. 그 곁에서 명수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글은 모르지만 수급비 들어온 문자는 귀신같이 알아보는 여자는 자신을 이리 출신의 지연이라고 소개한다. 그게 그이의 이름이 될 수 있을까. 『창신동 여자』가 끝나도록 의문은 남는다.
소설은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최현숙은 구술생애사로 나중에는 요양보호사로도 일을 다녔다. 일을 하면서 만난 가정의 현장과 느낌이 소설 안으로 스며들었다. 정희는 1일 세 시간 주 5일 근무의 조건으로 명수와 지연의 집으로 출근을 한다. 명수의 산책을 위해 일찍 나가 동네의 지형을 익히고 나중에는 여자의 돈 빌려달라는 부탁에도 응한다.
문장으로만 쓰인 소설이 있다. 구조와 형식에 갇힌 소설도 있다. 체험이나 사실을 배제하고(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쓰인 소설. 그런 소설을 만나면 답답하다. 이야기를 하려다가 만 소설 역시도. 『창신동 여자』는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답답하고 냄새나고 쥐가 있는 그곳으로 나를 끌고 간다. 너 잊어버렸구나. 좀 살만한가 보지. 이러면서.
잊지 않았다. 잊었다고 스스로를 달랬을 뿐이다. 진짜 이름이 지연이 아닐 수도 있는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그 여자의 삶의 내력이 흘러올수록 소설을 끝까지 읽고 싶다는 욕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거 꾸며낸 이야기 맞지 누군가는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는 여자의 삶에 버금가는 참혹과 고통이 있음에도 별일 아닌 듯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에 『창신동 여자』는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