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6
문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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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K마을에 모인 다섯 사람이 있습니다. 이 톤은 드라마, 영화를 요약해 주는 어느 유튜버의 시작 멘트를 따라 해본 것이다. 늘 그렇듯 누워 있지만 요즘은 더 누워서는 유튜브 영상을 본다. 예전에 봤던 영화나 신작 드라마를 리뷰 해주는 채널이 많이 있어서 놀랍고 즐겁다. 이야기 요약하는 노하우를 배워야겠다는 건설적인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신이 난 채 보기만 한다. 아무튼.


문진영의 소설 『딩』을 요약하자면 여기 K마을에 모인 다섯 사람이 있습니다가 적합할 것이다. 동해이면서 서핑의 명소로 떠오를까 말까 하는 K마을. 작가는 부러 지명을 노출하지 않는다. 그곳에 인물들을 모이게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처음으로 만나는 인물은 지원. 인문학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끔 불편한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 


드문드문 소식을 이어가다가 그가 암에 걸려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서둘러 장례를 치르고 마을을 떠나왔지만 집을 정리해야 한다는 절차가 부채처럼 남아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오래 떠돌다 온 지원은 그곳에서 누군가 등대에 남겨 놓고 간 귤과 아직 남아 있는 친구를 만난다. 주미가 있다. 그녀는 가족이 운영하는 모텔, 지금은 호텔로 명칭을 바꾼 곳에서 일을 한다. 언젠가 그 모든 걸 정리하고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재인. 하와이에서 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 P가 있다. 한국으로 돌아간 P가 어느 바닷가 모텔에서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살아있는 P를 만나기 위해서 끊은 비행기표는 P의 흔적을 쫓는데 사용된다. K마을에서 그녀는 주미가 일하는 곳에 거처를 잡고 카페에서 일을 시작한다. 영식과 쑤언이 있다. 아이를 잃은 영식은 오랜 방황 끝에 주미의 호텔 앞에서 포장마차를 차린다. 술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안주를 밥이 필요할 것 같은 이에게는 밥을 팔면서. 


베트남에서 일하러 온 쑤언은 동료를 화재로 잃었다. 곁을 내주기 않기 위해 애를 썼다. 타국에서 우정은 거추장스러운 장신구에 불과하므로. 반짝거리지만 이내 쓸모를 잃고 마는 것. 머물 곳이 없는 쑤언은 영식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함께 머문다. 『딩』의 서사를 인물 중심으로 압축해 보았다. 하나로 이어질듯한 이야기는 다른 인물을 만나 다른 방식으로 섞여 들어간다. 지원이었다가 주미로 제인에서 영식과 쑤언으로. 상실의 고통을 겪은 그들이 만나는 건 K마을의 황량한 바람일까. 의도하지 않은 누군가의 선량함일까. 


딩은 서핑보드가 뭔가에 부딪혀 상처가 난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P가 제인에게 알려주는 말이다. 우린 모두 뭔가에 부딪히며 상처를 주고받는다.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 『딩』을 읽고 해보았다. 부딪히지 않아도 스스로 상처를 내며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의 운명. 『딩』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가진 상처는 치유의 시간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겪으며 견딘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까다로운 작업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럼에도 『딩』에서 만난 지원, 주미, 제인, 영식, 쑤언의 서사를 되짚어 보고 싶었다. 나의 어두움, 불안, 불신, 분노의 원인을 그들에게서 찾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만 힘든 건 아니다. 모두 각자의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있다. 상처를 바라보는 태도에는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딩』은 전한다. 귤 하나를 놓아두고 미역국과 라면을 끓여 내어주는 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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