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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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도래할 대지구 종말 시대를 맞이하여 준비해야 할 단 하나의 무기는 귀여움 장착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친절함. 정말 그래? 반문할 수도 있겠군. 제5원소 중 마지막 하나 있잖아. 그거. 아. 그거. 사랑 말이지. 정말 사랑이 필요할까.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사랑인 걸까. 귀여움과 친절함은 반박 불가의 영역이다. 의미를 덧붙일 필요도 없다. 나의 귀여움과 당신의 친절함만으로도 지구 종말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은 좀 더 생각해 보자. 


이꽃님의 소설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은 말한다. 우리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너와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 우리가 정말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는 아닐지. 묻고 또 묻는다. 지구는 썩어가고 고정 급여를 받고자 하는 나의 인성은 파탄 나고 있는 지금 사랑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도 되지 않을까. 


페이지 터너 이꽃님의 소설답게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은 술술 읽힌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나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각종 영상에 중독된 나를 소설 속 세계로 끌고 간다. 어서 다음 문장 내 놓으란 말이야. 네가 하려는 사랑 이야기가 대체 뭐야. 궁금해 죽을 것 같아. 단정한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를 표지 모델로 해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배신감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든다. 


인적이 드문 저수지에서 한 남자가 가지런히 벗어 놓은 하얀 운동화를 발견한다. 너무 놀라 낚시 금지 구역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도 않고 경찰에 전화를 건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으리라는 예감으로. 운동화 한 켤레가 벗겨져 있다고 해서 사건이 되진 않는다. 다만 두 명이 저수지에 갔는데 한 사람만 돌아왔다면. 돌아오지 않은 이는 현재 실종 상태라면. 


사건은 성립된다. 경찰은 저수지에 갔다가 돌아온 한 명을 찾아간다. 별로 놀라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해주. 사라진 아이는 해록. 해주와 해록은 해해 커플로 학교에서 유명했다. 잘생긴 얼굴의 해록, 그 아이의 여자친구 해주. 그 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경찰이 해주를 찾아와 그들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해주가 해록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너와 나의 이야기. 


범죄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 이야기이다. 해주는 경찰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한다. 해록과 있었던 일들. 저수지까지 가게 된 일련의 과정. 소설의 제목인 문장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을 완성해 보자.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언어 뒤에 숨긴 비밀, 어두움, 고통을 말하는 소설이다. 사랑 뒤에 감춰진 폭력과 분노를 반전을 담아 그려낸다. 나와 네가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행하는 일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며 뒤로 감춘 서늘한 위선과 위악이 드러나는 순간 사랑은 힘이 없어진다. 그대로 재가 되어 소멸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얼마나 닳고 닳아 버렸는지 이제 누군가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의심이 든다. 


사랑이었을까. 사랑이 있었을까. 사랑이었겠지. 의심의 순간이 지나면 체념이 찾아오면서 고요해지는 이 세계. 세계를 파괴하는 악의 무리의 정체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였다는 것을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은 은은한 분노를 담아 보여준다. 가식적인 친절함과 자본주의적인 귀여움을 장착해 망해가는 지구에서 버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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