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지옥 -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
최지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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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특정 일이 되면 주인집 문을 두드렸다. 봉투에 월세와 공과금을 넣어서. 그때는 은행 앱이 없어서 인터넷도 깔려 있지 않아서 계좌이체를 하려면 ATM기나 은행을 가야 했다. 돈을 뽑아서. 그래 그러고 보니 돈을 뽑으러 갈 때 계좌이체를 했으면 되는 거였네. 그런 생각은 못 하고 직접 돈을 줘야 안심이 되었나 보다. 이번 달 월세입니다. 봉투를 건넸다. 나는 꽤 성실하고 정확한 세입자였다. 단 한 번도 월세를 밀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월세를 깎아주기까지 했다. 그때의 바람은 월세를 내지 않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 


고정 급여가 나오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생활비를 뺀 나머지 돈을 모아갔다. 이 정도를 모으면 전세로 갈 수 있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 그 돈을 모았을 땐 전세 가격도 올라 있었다. 다시 모아야 했다. 대출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서류나 절차를 무서워했다. 문학적인 글이 아니면 이해를 하지 못했다. 15년을 월셋집에서 살았다. 그 돈을 모았다면. 부질없는 망상의 끝에는 그 돈을 내지 않았다면 노숙을 하는 신세가 됐겠지. 그러니 괜찮아. 


월세 아니면 전세 아니면 자가. 내가 아는 주거 형태였다. 월세에서 단번에 자가로 갈 순 없으니 어떡하든 전세로 가자 했지만 매물이 없었다. 전세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다달이 나가는 주거비 없는 전세가 이제는 사기, 지옥이라는 단어와 함께 묶이게 되었다.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라는 부제를 단 『전세지옥』은 읽어나가기에 몹시도 힘든 책이었다. 지옥이라는 말을 나는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에서 인식한다. 그 유명한 문장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을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죽지도 않았는데 지옥에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얼마나 지옥 같았으면 아니 지옥이었으면 책의 제목을  『전세지옥』이라고 붙였을까. 『전세지옥』은 조종사의 꿈을 가진 한 청년이 전세 사기를 당한 지옥의 시간을 서술한다. 조종사 훈련비를 벌기 위해 천안에 내려온 청년 최지수는 월세 30만 원을 아끼기 위해 청년버팀목전세자금대출을 받아 리첸스 1004호를 계약한다. 작가는 그때 내가 왜 꼼꼼히 알아보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와 자책을 한다. 


부동산 사장의 말을 믿었고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기숙사에서 얼른 나오고 싶었고 전세보증보험비 3만 원을 내지 않아 좋아했다. 그것뿐이었다. 누군가를 믿고 사람다운 집에서 살고 싶었고 단 얼마라도 돈을 아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것이 너무 큰 소망이고 욕심인가. 해외 교육을 지원해 주는 GYC 면접을 보고 합격이라는 기대에 부푼 그날 문 앞에는 통지서가 붙어 있었다. '부동산 임의 (강제) 경매'라는 평소에는 전단지만 붙어 있는 문에 말이다. 


그날부터 지옥의 시간이 펼쳐진다. 면접에 합격해 해외에 나가면서도 집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주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출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카드론을 썼고 조종사 훈련비를 모으는 일은 요원했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두 개의 알바를 하며 돈을 갚아 나갔다. 그동안 정부와 지차체, 관공서, 기관은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전세는 재난이 되어 버렸다. 한 채도 갖기 힘든 집을 누군가는 몇 십, 몇 백 채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 피해를 청년들이 받고 있다. 


지옥을 살기에 천국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대. 『전세지옥』은 집을 구하는 요령,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시 대처 같은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한 청년이 전세 사기를 당하고도 오늘을 포기하지 않은 성실한 기록서다. 820일간의 시간을 버텨냈고 살아냈다. 이삿날 트집을 잡으며 보증금을 주지 않으려 했던 주인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받을 수 있었으니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 집이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그럼에도 쓰는 사람이 되어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에 뛰어든 한 사람의 집념을 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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