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탐정사의 밤 - 곽재식 추리 연작소설집
곽재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년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제일 좋았던 날이 있다면(이후에는 없을 듯하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걸로) 추석 연휴의 6일이었다. 한동안 갓생 모드로 지내다 포기하고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게 신간 편하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계속 그렇게 물미역처럼 지낸 건 아니고 영상도 보고 책도 읽고 집도 정리했다. 어떤 기억은 날씨나 냄새로 떠오르기도 한다는 데 나는 대체로 책을 읽던 시간으로 기억이 추출된다. 


곽재식의 추리소설 『사설탐정사의 밤』은 추석 연휴에 틈틈이 읽었던 책이다. 제목에 밤이 들어갔으니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는 따라주는 게 도리인 듯하니 밤에 읽었다. 전구색 불을 밝히고(이것도 책의 배경인 1940년대의 후반의 감성을 살, 린건 아니고 나이가 드니 하얀 조명은 눈이 부셔서 쓰지를 못하고 있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떨구는) 한 편씩 읽어나갔다. 


추리소설을 읽는 추석 연휴의 밤이라니. 바쁘다 바쁜 현대사회를 사는 갓생포기인에게 내가 내게 주는 최고의 복지 아닐까. 그것도 한국의 1940년대 후반의 혼란스러운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니. 생각해 보니 광복이 된 이후의 한국 사회를 조명한(아, 물론 이 시대를 담은 소설과 영화와 각종 창작물이 있겠죠. 허나 교양부족인 저는 잘 모르죠) 추리소설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러니 당장 읽어야지. 


『사설탐정사의 밤』은 그동안 SF 소설가로 알려진 곽재식이 야심 차게 준비한 추리물이다. 여섯 편의 단편으로 묶인 소설은 해방이 된 이후의 한국이 배경이다. 질서도 무질서도 함께 혼재했던 시절. 찾아오는 의뢰인이 흔치 않아 매일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탐정이 주인공이다. 창가에 서서 손님이 많은 탐정 사무소를 흘깃 거리는 게 주된 일과다. 평양에서 전기를 잘 공급해 주지 않는 탓에 밤이 되면 사무실은 어둠에 잠겨 있다. 


쉽게 퇴근을 하지 못하는 탐정에게 의뢰인들이 한 명씩 찾아와 일을 맡긴다. 여섯 편의 소설에서 의뢰인들은 모두 여자이다. 이런저런 회사에서 경리나 주임을 맡고 있기도 망한 부자의 느낌을 내고 있기도 한 여성들은 희한한 소문의 실체를 밝혀 달라거나 정리해야 하는 집에 가달라는 의뢰를 한다. 사진 두어 장을 주고 이 사람들이 일을 벌이면 알려달라는 다소 개꿀 같은 의뢰를 맡기기도 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개꿀이 아닌 개같은 고생의 일이었다.


탐정은 되도록이면 수사 착수금을 주면 일을 맡는다. 그 과정에서 얻어 맞기도 하지만 슬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 맞는 것도 일로 생각한다. 관찰력과 직관력이 좋은지 수사 자료를 흘깃 보거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식으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다. 그런 탓에 탐정 사무실이 망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지만 이 탐정은 장황한 비유를 좋아한다. 한 여성의 눈빛에 대한(그 의뢰인에게 맘에 있었던 듯) 묘사는 꽤나 성실하다. 


이박사로 불리는 이가 대통령이 되었고 아직 일제의 잔재는 청산하지 않은 무질서를 질서로 불리던 혼돈의 1940년 후반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일상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땐 경찰보다는 허름한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사설탐정을 찾아가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면서 내일이라는 낙관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사설탐정사의 밤』은 그런 밤의 상상으로 쓰였다. 


똑똑똑. 어두운 사무실을 두드리는 이에게. 문이 반쯤 열려 있어 끼이익 소리를 내며 그냥 들어오는 이에게. 사설탐정은 얼른 이야기를 해보시오라는 궁금한 표정을 지어 의뢰인의 슬픈 마음을 다독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