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 탈코르셋, 섹스, 이혼에 대하여
배윤민정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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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호칭 개선 분투기를 다룬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를 읽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행히도 다음 책이 있었다. 엄훠. 세상 사람들 부지런한 거 보소. 책을 살 거야 라는 마음의 준비는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 책인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의 첫 목차는 외도였다. 시방 내가 무슨 글자를 본겨. 


'내가 지금 하려는 얘기는 부끄러운 얘기인가?'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아닙니다. 일단 아니라고 답해준다. 들리지는 않겠지만.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 거라고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긍정의 말을 하는 게 인지상정. 그다음 문단에서는 '이 글을 시작하는 지금으로부터 3일 전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우자인 준호가 얼마 전에 퇴사한 회사에서 직장동료와 깊은 관계였단걸.'


인간사가 이렇게 흘러간다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네요.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에서 민정을 가족 안에서 평등하게 대해달라고 중재하고 노력했던 두현은 준호가 되어 직장 사람이랑 바람을 피웠다. 민정은 준호가 외도를 한다는 사실을 캐내지도 밝히지도 않았다. 그저 당사자들이 술술 불었다. 이건 마치 수사 의지가 없는 형사가 얼른 사건 종결을 해볼까 증거는 없지만 있다는 식으로 한 마디 툭 던졌는데 피의자가 증거까지 갖다 받치는 꼴이랄까. 


민정은 놀란다. 안 놀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첫 반응으로는 놀라야 맞지. 놀람 다음에 당혹, 배신, 울분으로 감정의 단계가 변한다. 고통의 마지막 감정인 체념의 전 단계까지는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에서 풀어낸다. 남편의 외도 이후에 나타난 자신의 다양한 감정들을. 어두운 방에서 혼자 삭히고 상상하는 식으로 하지 않고 책상에 앉는다. 앉아 쓴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이혼을 하는 과정을 굳이 책으로 쓴다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커뮤니티에만 가도 이런 사연은 복사, 붙여넣기 한 듯 매일 올라오는데 말이야. 그렇지만 필요하다. 이혼의 과정-그 과정에서 느껴야 했던 서러움과 차별의 언어들-과 재산을 분할하는 중에 목격하는 인간들의 쩨쩨함 그리고 혼자 남겨진 이후의 감정을 글로써 목격하는 일이 말이다. 


생각해 볼까. 이런 일련의 지난한 과정을 전화나 만남을 통해 들어야 했다면 물론 알죠 당신의 고통을 하지만 저 역시 너무 힘들거든요 인류애가 바닥날 것이다.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아내에게 요구하는 틀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가족 내에 호칭을 달리 불러보자 제안했을 뿐인데 남편의 친구 모임에서 자신을 배제한 채 어떤 소리들을 들어야 했다. 참을 수 없다. 그러니 써야 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여러 역할이 있다. 딸, 아내, 엄마, 며느리, 직장인.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되지 않을 수 있다. 요구는 거절할 수 있다. 그냥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지금도 외모 평가를 하는 인간들이 심심찮게 출몰하는데 이제는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그냥 사람이 되어간다.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라는 제목을 바꿔볼까. 여자라는 이상한 존재. 이 책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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