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여성 홈리스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30
김진희 외 지음,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기획 / 후마니타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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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애착은 아니 집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제 와 환경 탓을 하고 싶지 않다. 탓으로 돌린다는 건 비교적 쉬운 회피 방법이면서 도피이기도 하니까. 내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잊어버리기이다. 그래도 기억은 난다. 가방에 책과 교과서, 옷을 쑤셔 넣고 대문을 나서야 했던 밤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짐 싸기의 달인으로 살았다. 


다행히 집이 생겼고 집에 누워서 예쁘고 실용적이게 꾸며 놓은 집 소개 영상을 자주 본다. 어떤 유튜브 채널은 냉장고와 신발장, 수납장 안까지 보여준다. 남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증과 호기심을 채워 준다. 보면서 영감받아 책상의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주말은 흘러간다. 청소 잠깐하고 누워 있다가 정리하고 다시 눕는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2년간의 취재 끝에 쓴 여성 홈리스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의 첫 번째 챕터를 읽으며 놀랐다. 이 책을 읽던 시간은 오전이었다. 특이하게 이번 주는 여섯 시와 일곱 시 사이에 눈이 떠졌다. 그전에는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누워 있었다. 그러다 어두운 생각에 빠지는 게 루틴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 책을 읽었다. 그렇게 출근하기 전까지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를 읽었다. 


놀라고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던 첫 번째 이야기는 공원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며 그 안에서 잠을 자는 1959년생, 주민등록이 말소된 자신을 이가혜라고 소개하는 여성의 사연이었다. 그녀는 2015년 봄부터 화장실에서 살았다. 화장실과 주변을 청소한다. 밤이 되면 문이 잠기지 않는 그곳에서 잠을 잔다. 누가 들어올지 몰라 깊은 잠은 잘 수 없다. 


가혜 님의 이야기 끝에 흑백사진이 한 장 작게 들어 있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화장실 한편을 담은 사진이었다. 흑백이지만 그곳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산다니. 책을 읽어갈수록 화장실에서 지내는 건 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성 홈리스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남성들의 노골적인 위협과 협박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든다고 했다. 


감히 나의 경험을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화장실로 도망친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집이 있든 없든 화장실은 그런 곳이었다. 위험을 피해서 들어가지만 도리어 위험해지고 마는 곳.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여성 홈리스들을 취재하며 주거는 곧 생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린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학대를 받았다. 


처음부터 집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집이 집이 아니었다. 집에서 나와야 했고 집을 구해야 했지만 노동을 할수록 점점 가난해지기만 했다. 역사에서 공원에서 화장실에서 산다. 주거 지원이란 게 얇은 합판으로 덧댄 길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는 고시원과 쪽방으로의 이주가 전부였다. 정책은 어렵고 서류는 복잡하다. 그녀들이 단단한 벽과 방이 있는 곳에서 살수 있는 힘을 모으기 위해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쓰였다. 


집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타인의 불행을 보고 나의 현실에 안도하는 용도의 책이 아니다. 가방에 들어가는 것과 방에 들어가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방에 들어가지 못해 가방에 들어가 사는 현실이 존재한다. 저 무수하고도 헉 소리 나는 금액의 아파트들은 누굴 위해 서 있는가. 홈리스이지만 활동가로서도 살아가는 서가숙의 외침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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