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김의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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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슬프다. 토요일에는 정신없이 누워 있다. 정신을 차리면 일요일 오전이다. 청소랑 이불 빨래 해놓고 다시 눕는다. 내일 월요일이구나 그러면서. 누워 있다 보면 잠이 온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자 책, 영어책, 세무 자격증 책을 샀다. 사기만 했다는 슬픈 이야기. 책장 한편에는 그런 책들로 빼곡하고 원래의 정신으로 소설책과 시집을 사 모으고 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에서 만든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모든 자기 계발을 포기한 한심한 눕순이가 산 최근의 책이다. 동인의 이름이 맘에 든다. 월급사실주의라니. 월급이라니. 말만 들어도 개 설레는 단어. 월급. 월급에 진심인 소설가들이 소설을 썼다니. 으아. 정말 좋구나.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애호하는 나로서는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오늘. 그러니까 월급날은 10일인데 10일이 공휴일이면 다음날 주는 곳이라 11일인 오늘 월급을 받았더랬다. 왜. 왜. 왜. 원래 월급은 일찍 주는 게 국룰 아닌가요? 뭐 대표 방침이 그러하니까 어쩔 수 없다만  빨리는 바라지도 않고 제날짜에 라도 받고 싶다. 알라딘에서 마침 기막히게 내 월급 날인 줄 알고 쿠폰을 주길래 책 샀다. 알라딘은 진짜 책 빨리 배송해 준다. 너 정말 고맙다. 


잊지 않고 정신 차리고(주말에는 없는 정신이 월요일부터는 돌아온다는 외거노비의 비루한 운명.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에서.)급여명세서도 보냈다.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는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예스러운 문구를 적어볼까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도 읽었으니 말이다. 원래 이 말은 급여명세서나 누런 월급봉투에 쓰인 말이니까. 주말 내내 누워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읽었다. 한 편만 읽어야지 했다가 누운 자리에서 열한 편을 다 읽어버렸다라나 뭐라나. 그렇게 월급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라져가는 일요일을 애도했다. 


삼각김밥 공장에 일하러 간 청년 노동자의 분투기 「순간접착제」를 시작으로 학습지 교사의 어느 여름을 그린 「밤의 벤치」, 점심 식대를 올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담긴 「광합성 런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걱정에 걱정으로 지새우는 시간의 「숨바꼭질」 등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의 세계는 먹고사니즘의 간절함을 보여준다. 때론 기쁘지만 항상 지치는 기본값의 감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전화를 걸 일이 많다. 이쪽에서는 밝게 말해도 대체로 상대방은 힘이 없다. 말을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아 사오정처럼 되묻는다. 이해한다. 암 이해하고 말고. 밝고 명랑하고 상냥한 게 이상한 일이다. 검증되지 않은 통계지만 목요일 오후에 사람들은 더 힘이 없다. 이제 목요일이라니 하는 감정이 전화를 타고 건너온다. 이서수의 소설 「광합성 런치」를 읽으며 웃고 울었다. 


재무팀장. 불혹의 나이. 차진혜는 좋아하는 박이재를 위해 식대 인상에 앞장선다. 목표는 식대 만 원. 7천 원으로는 회사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동해 식당의 대구탕 밖에는 먹을 게 없다. 식대 때문에 박이재가 퇴사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어떡하든 대표를 설득해야 한다. 이재가 휴게실에서 두유를 몰래 가져가려다 걸렸을 때 진혜는 더 가져가라고 말해준다. 엑셀을 못하는 인사팀 홍 차장이 비혼 축의금을 받기 위해 글을 써왔을 때는 농담을 건넨다.


특성화고의 현실을 담은 「섬광」, 코로나로 타격을 맞은 여행사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간장에 독」, 배달 일과 택배 상하차 일을 해서 번 돈을 여친과 유튜버에게 바치며 자신은 지하철에서 잠을 자는 스무 살의 하루는 「카스트 에이지」에 있다. 기획의 말에 장강명은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라고 밝힌다. 책에 실릴 소설의 규칙 중 하나는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이다. 기계가 말을 하거나 타임워프를 해서 시공간을 떠돌고 지구에 자원이 없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 해야 한다는 설정 따위는 없다. 


아파트 도색 작업이 한창 중이다. 누워 있다가 줄에 매달려 아파트 벽면을 세척 중인 사람의 흔들리는 몸을 보았다. 여기는 14층인데 사람을 만났다. 괴담이 아니다. 그 옛날 옛날의 공포 이야기. 밤에 공부하는데 창가에 할머니가 나타났다는. 여기는 이층인데 하는. 줄에 의지한 채 창과 창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부추기는 한국 사회는 병들었다. 포괄임금제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식대를 주거나 점심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꿀 같은 주말에 김치볶음밥 만드는 시간도 아깝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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