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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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 박종필은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전자의 앎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박종필의 앎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일 것이다. 전자의 앎이 폭넓음을 지향한다면 박종필의 앎은 정확함을 지향할 것이다. 

(홍은전, 『그냥, 사람』中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앎'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다시 앎은 '앎음'이라고. 홍은전의 산문집 『그냥, 사람』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알고 앓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거꾸로 말하면 알지 못하고 아프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일이 된다. 아름다운 일이 되려면 알아야 할 것도 그로 인해 아플 일도 많아야 하는데 모르는 채로 건강하게 살고 싶기만 하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내가 책을 왜 읽을까에 대한 답을 『그냥, 사람』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안전한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싶어서. 독서는 그게 된다. 현장의 일로 사람의 일로 뛰어들지 않아도 책을 펼치면 세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비겁하다고 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고 폭넓음을 지향하고 싶은 거라고 말해준다. 노들야학에서 오랜 시간 교사로 일한 홍은전은 자신이 겪은 세계를 섬세하고 정확한 언어로 세상에 내보인다. 


『그냥, 사람』을 읽으면서 여러 번 마음이 먹먹해졌다. 내가 아는 것이란 얼마나 빈약하고 허약한 것이었던가. 반성과 슬픔이 몰려왔다. 대체 내가 무얼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물 안 개구리. 홍은전은 노들야학 교사를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특강을 듣는다. 그동안 자신이 알던 세계의 지식과는 다른 현실의 이야기와 마주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물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개구리라는 걸 받아들인다. 따듯하고 건강한 시선이었다. 


다름에 분노하지 않는다. 홍은전은. 『그냥, 사람』에 쓰인 글들은 그래서 아프고 활기찼다. 언뜻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읽어보면 안다. 아프지만 왜 활기찰 수밖에 없는지. 모르고 있었던 현실에 그렇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분명 한국 사회는 이상하다. 잘못되었다. 바로잡아야 함에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외면한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며 한 달에 이십만 원을 모아 이천만 원을 만들어 노들야학에 기부한 사람.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해 홀로 죽어간 사람. 노숙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시설에 들어갔지만 이내 술 냄새가 난다고 쫓겨난 사람. 그런 그이가 걱정 되어 기다린 사람. 추모 공원을 짓기 위해 이웃집 사람들에게 떡을 돌리는 사람. 살아 있는 어머니에게 임대 아파트를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난 사람. 


그들은 그냥, 사람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건 뭉특한 셈법이다. 정교하지도 분석적이지도 않다. 빈자와 부자. 임차인과 임대인. 정상과 비정상. 생존자와 희생자. 철거민과 용역 깡패. 서로를 반대편에 세워 놓고 싸워야 하는 이곳에서 『그냥, 사람』은 깨닫게 해준다. 우리 모두는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일을 하다가 힘이 들면 이런 생각을 했다. 너나 나나 그냥, 사람, 똑같은 인간 아니냐. 


나로서 살아가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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