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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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혼이라는 말이 있다. 내 돈 내고 내가 혼나는 곳이라는 뜻의. 어디 보자. 헬스장, 미용실, 병원, 운전면허 학원, 수련회장. 총 다섯 군데이다. 헬스장은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고(정말 이해 안 간다. 돈 주고 굳이 헬스장을? 게으름뱅이는 끝까지 가지 않을 듯싶습니다만. 또 몰라. 인생 모르는 거니까.) 미용실, 병원, 수련회장 쌉인정. 마지막 운전면허 학원이 남았는데. 그곳은 운전대 잡자마자 냅다 혼난다고 한다. 


그래서 운전면허가 없다고 하면 웃기려나. 혼나는 게 무서워서 면허를 아직도 안 땄다고 이러면서 비웃으려나. 나 진지해. 정말. 혼나는 거 무섭고 소름 끼치도록 싫어. 두부, 쿠크다스(이 와중에도 예시를 먹는 걸로 드는 나는 찐돼지.) 멘탈이라 누가 조금만 싫은 소리하고 화를 내면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무너진 마음이여. 어찌어찌 차가 없어도 일을 다녔고(이건 노력이다. 엄청난. 직주근접. 그거 아무나 못이루지.) 차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은 아예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운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도록 살아온 철저한 나 칭찬해. 해볼 수 있다면 끝까지 하지 않을 거야. 운전. 장류진의 소설집 『연수』의 표제작 「연수」는 이런 나의 의지를 조금 흔들어 놓았다. 주인공 주연은 잘나가는 회계사. 시험이든 취업이든 실패라는 게 없는 인생이다. 그런 그녀가 딱 하나 하지 못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운전이었다. 신규 프로젝트 때문에 집에서 회사까지 자차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운전 연수를 위해 맘 카페에 가입해 등업 글을 올리고 준서맘에게 강사 연락처를 받았다. 강사는 단발머리 아주머니. 주연은 그녀와 운전 연수를 시작한다. 그녀는 무사히 연수를 받아 집에서 회사까지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연수』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눈치는 없지만 농담을 잘하고 싶고 소심하지만 대범한 척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의 말을 산뜻하게 해준다. 


혼자서도 운전을 잘할 수 있도록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고 해주고(그 단순한 말을 사람들은 왜 하지 않는 걸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누가 뭐라고 하든 내 쪼대로 노래를 부르도록 독려한다. 상대를 오래도록 오해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지만 일단 승부를 겨뤄본다. 처음 만난 이가 준 새하얀 잠바에 목이 메고 소설 그까이꺼 대충 하는 마음으로 다시 써보라고 말해준다. 


심각한 일임에도 심각하지 않은 일이라고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심각하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린다. 일의 잘못됨을 전부 바로잡고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해결사가 아니니까. 잘못의 크기를 재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결해 나간다. 『연수』는 큰 실수든 작은 실수든 뭐 어때 실수할 수 있지 가벼운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연수』 속 웃음의 문장들. 『연수』의 표지에는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최근의 몇 년 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 말이 소설에 있다면 꼭 읽어야지. 듣지 못했다면 읽어야지. 그리고 나에게 해줘야지. 뒤끝 없고 화통한 아줌마 운전강사를 만날 수 있다면 운전대를 잡아 버려야지. 잡기만 해. 흔들고 돌리고 돌리고. 후진할 때 뒤쪽 보며 한 손으로 가보자고(꼴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넌 겁이 없다. 어제보다 오늘 네가 더 낫다. 잘하는데.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 마지막 결정타.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이런 말들이라면 운전 아닌 운전 할아버지라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빙빙 돌리지 않고 진심을 숨기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칭찬의 말이 간절하다면  『연수』를 읽으면 된다. 너라서 울보지만 끝까지 해내고 싶어 하는 너라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연수』에 한가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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