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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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특정 검색어를 넣지도 않았는데 유튜브는 내게 고시원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여준다. 오래전에 방영된 듯한 다큐 영상도 끌어올려준다. 화면 속 그들은 얼굴을 보여주진 않는다. 밥을 차려 먹고 일을 간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얼마의 소비를 하였는지도 알려준다. 대개 음식을 잘한다. 콩나물 하나로도 여러 가지 요리를 뚝딱 해낸다. 


지금으로부터 277개월을 더 납부하면 한 달에 오십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국민연금 통지서가 왔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나. 물가는 계속 오르니까 그 돈으로는 살 수 없지 싶다.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의미 없다. 늙으면 어떻게 사나. 부양해 줄 누군가도 없이 살아갈 수 있나.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그때 가서 고민해 본다. 


하라다 히카의 소설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는 나이가 든 채 혼자 살아가는 독거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평생 모신 부모가 돌아가시자 혼자가 된 기리코가 주인공이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 도모도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되었다. 아들들이 있었지만 도모는 기리코에게 같이 살자고 말한다. 기리코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한다. 집을 얻고 월세는 반반씩 부담한다. 도모는 마트 일을 기리코는 청소 일을 한다. 


마트에서 남은 반찬을 도모가 가져오고 요리는 기리코가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옷을 차려 입고 호텔의 디저트 뷔페나 런치 뷔페에 간다. 좋은 날들이었다. 도모가 죽기 전까지는. 도모가 죽자 기리코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도모와 함께 빌린 집에서 나와야 했다. 기리코는 생각한다. 과연 이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다 뉴스를 본다. 생활 능력이 없는 이들이 일부러 교도소에 간다는 것을. 


도모는 심각하게 고민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교도소에 간다. 그곳에 가면 말 그대로 먹여주고 재워준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일도 쌀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기리코는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다. 시작은 마트에서 딸기 찹쌀떡을 훔치는 일로.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는 고령화 사회에 노인 빈곤 문제를 일상의 언어로 다룬다. 기리코가 고민하는 일들. 주거와 생활의 문제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마트에만 가도 한숨이 나온다. 요리 능력이 제로인지라 식자재는 거의 사지 않지만 과자 코너에는 오래 머무른다. 과일 코너도 기웃거린다. 집에 와서 생각한다. 뭘 샀다고 이 금액인지. 기리코가 마트에서 고민하던 장면. 딸기 찹쌀떡을 살까 말까. 이 돈으로 다른 식재료를 사서 밥을 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딸기 찹쌀떡은 지금 내 처지에 사치 아닌가. 한 번쯤은 고민해 본 모습이다. 


76세 기리코는 범죄를 저질러 그토록 원하는 교도소에 갈 수 있을까. 277개월을 끊기지 않고 국민연금을 낼 수 있을지 가망이 없다. 미래의 집에 교도소는 가혹하다. 소박과 평범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남들 하는 것처럼이라는 말은 너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답답한 현실이지만 소설의 현실은 미약한 희망을 던져주며 끝이 난다. 그래도 먹어요. 딸기 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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