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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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온의 장편소설 『타오르는 마음』의 작가의 말을 읽었을 때 어떤 기억들과 마주해야 했다. 내밀하고 치졸해서 이야기를 해본 적도 글로 써본 적도 없는 기억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거나 쓰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더욱 실망할까 봐. 실망의 주체는 남이 아닌 내가 되기에.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겠지. 그러니 묻어둘 수밖에. 


그러니까 『타오르는 마음』은 말도 안 되게 흉포하고 어두운 소설이다. 주민이 300여 명인 작은 마을 비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2번 국도와 17번 국도가 교차하는 비말은 트레일러 기사들이 쉬어가는 거점지역이었다.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돈벌이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고속도로가 생겼고 운전자들은 더 이상 마을에서 쉬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낡고 쇠락해가는 마을.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마을 사람들은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 해맞이와 야간 마라톤. 9년 전 달리기 광 중년 수의사의 발견이 없었다면 비말은 그럭저럭 이냥저냥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먼저 마지막 구간에 도착한 수의사는 바위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불에 탄 시체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태풍이 불면서 평원에서 다섯 구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을 영화로 찍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마을 사람들은 희미한 돈 냄새를 맡았다. 세트장을 범죄의 역사 박물관으로 개조했고 영화가 흥행하면서 비말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연쇄살인마가 살지도 모르는 마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돈이 된다는 확신에 찬 마을 사람들은 사건을 축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다. 


『타오르는 마음』은 신랄하게 보여준다. 살인마를 내세워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인간의 광기 어린 집착을. 주인공 밴나는 어머니가 떠난 비말에서 자신에게 관심 없는 아버지와 살아간다. 형이 죽임을 당한 후 옷을 벗고 다니는 오기를 안쓰러워하고 유가족인 나조와 퀴즈 프로그램에 나갈 연습을 한다. 유일하게 말벗이 되어준 나조가 어느 날 평원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때부터 밴조는 나조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긴 말 고고밴나의 의문을 풀어나간다. 


전작 『시스터』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풀어나간다. 여성/남성으로 이분법 할 일은 아니지만 사건의 핵심과 중간, 끝, 해결을 향해가는 인물이 여성인 점이 특별하다. 신체적인 특성 때문에 맞고 끌려간다. 쾌감을 느낄만한 액션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목이 졸리고 납치된다. 아이큐가 138이라고는 하지만 머리가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밴나는 찾아가고 묻고 때로는 협박을 하면서 비말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마을 사람들과 나조를 죽인 범인을 찾는 동안 밴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계속 말한다. 단 한 사람만 나조만이 밴조의 곁에서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팬티 사이즈를 물어 늘어난 팬티 대신 새 팬티를 사서 주고 싶었고 퀴즈 프로그램에 다시 나가 상금을 타서 같이 마을을 떠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돈이 없으면 일상을 영위할 수 없지만 돈만 생각하다가는 일상이 아닌 삶이 파괴될 수도 있다고 『타오르는 마음』은 일깨워준다. 


부끄럽고 망신스러웠던 기억을 가지고 어른이 된다. 꿈을 꾸고 그곳의 배경을 잊지 않고 소설을 썼다. 나의 타오르는 마음을 어떻게 꺼트려야 할까. 할 수 없이 이 마음은 내내 불타고 있을 듯하다.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 앞으로 내달리는 우회는 없고 오로지 직진으로 승부하는 이두온의 세계로 불타는 마음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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