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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라는 계절
김의경 지음 / 책나물 / 2022년 10월
평점 :
시, 소설, 에세이. 어느 글이든 생활감이 넘치는 글을 좋아한다. 마트에 가서 장 본 내역에 대해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커피를 마시는 어느 하루, 여름이라고 과일을 사서 나눠 먹는 더운 날의 풍경들. 못 참고 편의점에 들러 신상 빵을 둘러보는 일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듯한 하루 같지만 하늘 위 구름의 모양처럼 조금씩 다른 모습의 하루라는 걸 생활감이 넘치는 글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땐. 잘난척쟁이라.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어려운 책을 읽곤 했다. 밑줄도 그어가면서.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건지 모를 시절의 일이다. 아침에 눈 뜨면 다짐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책상에 앉아 자기 계발해야지. 얼마 전에 사둔 영어책을 펼치고 강의를 들어야지. 자격증 공부하려고 사둔 책도 펼쳐야지.
문을 닫고 나오는 시점이 되면 영혼과 육체는 분리된다. 너덜너덜한 마음. 후줄근해진 육체. 집 앞에 디저트 카페가 생겨서 들어가 보았다. 가격을 보고는 그냥 나왔다. 그 유명한 국밥론. 이 돈이면 국밥이 한 그릇인데 하는. 다행히 며칠 후 다정한 친구가 커피와 빵을 사줘서 마음의 온도가 올라갔다. 돌체 라테가 스타벅스에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는.
소설가 김의경의 첫 에세이 『생활이라는 계절』은 제목처럼 생활의 감성으로 충만하다. 청춘, 집, 직업, 출산 등 소설의 주제도 생활과 밀접해서 책이 나올 때마다 읽었다. 에세이가 나온 지는 몰랐네. 이제 알았으니 읽어야지. 하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아래에 실린 글은 담담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개인 파산 신청을 한 가족이 다시 만나는 장소로는 어디가 좋을까. 반지하 방 앞에 라디오를 켜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의 사연은 무엇일까.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분식점 사장님은 그해 추석에는 집에 갔을까. 비건 식당에 간 엄마가 내놓은 음식 맛 평가는? 길에 앉아 영상통화를 하다 우는 외국인 노동자를 마주친 하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책을 읽으면 그 마음과 그 진심과 그 사연에 대해 알 수 있다.
출근 전 확인한 단체톡방에는 어떤 이가 아직 출근 전이니 출근 시간, 퇴근 시간 엄수 독려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저 이도 월요일이 힘들었구나. 다행히 그는 출근을 했다. 모두 힘내세요. 동은이의 말처럼 우리는 왜 힘이 나지 않는데도 힘을 내야 하는지 힘내는 거 지겹지만 힘을 내지 않으면 무수한 결제 예정 금액을 어찌할 수 없으니 힘을 내보도록 하자. 우리가 가진 게 생활밖에 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