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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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쁨과 행복이 아닌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기쁨과 행복이 매일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번 생은 글렀다는 자조 대신에 그럭저럭 괜찮고 좋았다는 생각을 마지막에는 품고 떠났으면 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웃고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하나씩 사는 오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하나 마나 한 말을 떠올린다. 이거면 됐다는 만족을 위해 살아내야겠다.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큰 기쁨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전자책이 나올 텐데 조급증 때문에 종이책으로 사서 읽었다.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 무려 첫 문장이 '집에 무사히 돌아가는 것까지가 임무입니다.'이다. 안 읽을 수 있겠나. 진정한 집순이는 밖에 나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집 사진을 보는 거란다. 나 매일 내 방 사진 들여다본다. 집에 보내줘.


아침마다 《워킹 데드》를 찍는다. 워워워 속으로 소리를 내며 흐느적 걸어간다. 일하러. 사노비의 운명.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들어가는 순간을 그리워한다. 일이 끝나면 경주마처럼 직진. 단숨에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소설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임무가 있는 남자, 실연한 남자, 도망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나와시로 호수에서 펼쳐지는 마이크로스파이들의 활극의 분위기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사카 고타로 소설답게 전형적인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지만 착하다. 괴팍한 악당이지만 웃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역설의 인물을 창조해 내는 능력이 멋지다. 받아들인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걸. 어쩌다 만난 악당의 포스가 강해 좋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을 뿐이다.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준다.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은 위험한 순간에 서로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분위기를 살리고 싶은 욕심에 말실수를 하고 후회하는 남자,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갔지만 대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자들, 회사에서 부하들을 잘 살피고 있냐고 물어보는 여자, 벌레를 죽이지 않기 위해 머그잔으로 덮어 옮겨주는 여자. 이왕이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하고 소설은 말한다. 


우리 각자는 행복해지기 위해 상대의 행복을 위해 지령을 받고 온 작은 스파이가 아닐까. 그런 숭고한 임무를 받고 이곳에 왔는데 출퇴근 지옥에 갇혀 나 자신의 행복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나의 행복이 없으면 다른 이의 행복도 없는 거니까.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는 잊지 말자 행복, 행복, 행복이라고 속삭인다. 그런 의미로 오늘의 행복 하나. 폭우를 뚫고 무사히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헤헤. 헤헤헤. 글고 또 하나의 택배가 미쿡에서 올 예정입니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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