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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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집안에 들여놓은 물건 중에 부피가 가장 큰 건 원형 테이블 세트이다. 가로 지름이 무려 1000mm나 된다. 의자 두 개도 같이 왔다. 생각은 이런 거였다. 아침에 빵이나 소시지, 두유를 서서 먹고 가지 않고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혹은 뉴스를 보면서 먹어보자. 교양 있는 아침이 되어보자.  테이블이 오고 조립을 하고 처음 며칠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서서 먹고 갔다. 아침에 그것도 겨우 일어나는 내게 교양을 챙길 시간이 없다는 걸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원형 테이블은 창가 자리로 쫓겨났다. 춘식이 소파에 누워 있기 전에 잠시 앉아 있는 용도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한동안 집에 물건을 들이는 것에 신중했었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는데 사고 싶다는 기분에 충실한 나머지 집이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걸 보고서 각성했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한 것만 사자. 그러면서 집안을 정리해 나갔다. 책을 팔고 입지 않은 옷을 정리했다. 비싼 신발도 신지 않으면 삭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키야미우의 소설 『시어머니 유품정리』는 며느리 모토코가 죽은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옷만으로 가득 찬 방, 냉장고 두 대에 들어 있던 음식들, 각종 플라스틱 반찬통과 비닐봉지들. 소설에 나오는 대사처럼 차라리 업체를 불러서 정리를 했었어야 했던 시간들. 정말 물건을 함부로 사지 말아야겠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옷을 사 모으지 말아야겠다. 비싼 옷이어도 먼지만 쌓인 옷은 입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 깨달음과 반성의 나날들. 


마트에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모토코의 시어머니 집은 물건들의 천국이었다. 혼자 산다고 해서 물건이 없는 게 아니었다. 싱크대에는 그릇, 서랍장에는 옷, 심지어 인형 장식장에도 추억의 물건이 가득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층의 집. 모토코는 혼자서 물건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주위의 조언대로 업체에 맡길까 했지만 알뜰한 모토코는 자신이 해보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정리는 쉽지 않았다. 대형 폐기물 버리는 날은 지정되어 있고 종량제 봉투에 물건을 담고 계단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냉장고에 든 음식은 상하기 시작했고 베란다에는 화분과 커다란 돌도 있었다. 젊지 않은 나이의 모토코. 일을 하고 있어 온전히 정리에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다. 긍정적인 성격의 모토코는 대체 왜 이런 걸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을까 죽은 시어머니에게 푸념을 해가면서 씩씩하게 정리를 한다. 그러다가 시어머니의 진짜 모습도 알게 된다. 


모토코의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와는 다르게 깔끔한 성격이었다. 병이 들었다는 걸 알고부터는 남은 이들이 자신의 물건 때문에 힘이 들까 봐 정리를 했다. 자신이 가진 물건 목록을 주면서 필요한 걸 고르라고도 했다. 시어머니를 단순히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도시에 살면서도 시어머니는 마음을 터놓고 이웃과 왕래를 했다. 모토코의 친정어머니는 남편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인간관계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두 어머니들의 상반된 모습을 떠올리면서 모토코는 무얼 남기며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시어머니 유품정리』를 다 읽고 나면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어디 있을까 놀랍기만 하다. 왕복 세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어머니 집에 가서 물건을 정리하는 며느리라니.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대사를 날리며 오는 지름신을 무찌를 수 있는 소설이다. 지름신에게 빙의 되어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는 나의 따귀를 철썩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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