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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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들어서 한 각오가 있다면 각오라고 했지만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한 달에 한 번은 꼭 쉬자는 것이다. 작년에 쓰지 못한 연차가 쌓여 있고 2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또 연차가 생기더라는. 이제 나도 4대보험 들고 1년이 지나도 계속 일을 다닐 수 있으니까. 한 달에 한 번은 쉬자. 연차 수당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쓰지 못하면 아깝다. 


이런 착각을 했다. 내가 안 나가면 일은 어떻게 되지?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되는 거 아니야? 거대한 착각. 내가 없어도 세상은 회사는 잘 굴러간다. 그리하여 나는 5월이 가기 전에 연차 하나를 쓰기에 이른다. 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소심과 예민 빼면 시체인 나의 성격으로는 대단한 결심이다. 저 이때 쉬겠어요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온 날. 등신 중에 상등신이라고 나를 자책했다. 


나란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인가? 나의 감정보다 상대방을 생각하느라 할 말도 못 하는 인간. 임성순의 회사 3부작의 마지막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신이란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연차를 쓰겠다는 말을 못 하는 인간의 고뇌는 소설의 주제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하고 잡스러운가. 인간의 고통에 신은 응답을 하는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신부와 인간의 존재를 의심하는 의사의 이야기는 나의 하찮은 고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속상하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임성순의 전작들에 비하면 꽤나 묵직한 주제와 서사를 보여준다. 『문근영은 위험해』를 읽고 바로 읽어서인지 문체에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작은 꽤나 발랄하고 상큼까진 아니고 앙큼함.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간 박현석 신부. 수술 중에 실수로 사람이 죽고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해외로 의료 봉사를 떠난 최범준.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만난 15년 전과 이후의 시간을 번갈아 가면서 소설은 들려준다. 순전히 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갈등과 번민을 한다. 학살의 현장에서 다정했던 이웃이 한순간에 폭도로 돌변해 살인을 저지르는 그곳에서 현석과 범준은 신과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다. 


어리석은 인간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 고통을 받고 있는 인간에게 신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어리석고 고통받는 인간에게 신은 그저 침묵으로써 대답하고 존재한다고 말한다. 영화 《사바하》에서 박목사는 허공에 대고 묻는다. '어디 계시나이까.' 인간의 부르짖음에 신은 그 어떤 응답의 말도 해주지 않는다. 


다정한 이웃이 괴물로 변하는 현장에서 벗어난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재회한다. 범준은 아이의 죽음을 겪고 자살자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회사를 차린다. 죽기를 원하는 자들의 죽음을 도와주고 버려질 장기를 꺼내 새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일. 그 일을 회사는 수확이라고 표현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채 사제 일을 하는 현석은 누군가의 오해를 뒤집어쓴 채 낯선 장소로 간다. 


나를 부수어 가는 일. 사는 게 벅차고 괴롭다 보니 신을 찾을 여유도 없다는 건 슬픈 건가 다행인 건가. 나의 나약함과 한심스러움을 지켜보는 일로 수양을 대신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오히려 다정했다. 그런 다정한 사람들도 때때로 야수의 얼굴이 된다. 그것이 신이 침묵하는 인간 사회의 참모습이다. 내가 어떤 괴물인지 알아야 신과 마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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