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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평점 :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보는 건 숫자이고 빈번하게 하는 말은 종합소득세니 월 마감이니 정산이니 하는 숫자와 관련한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어찌나 숫자에 밝으신지 돈이 하루라도 늦게 들어가면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온다. 우리 쪽은 이 날짜에 들어간다고 해도 자기들 쪽에 맞춰달라고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으니 거래를 하지 말자고 내 쪽에서 말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장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문과생은 하루 종일 숫자만 보고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 있단다. 일억 이상 되는 금액을 헤아릴 수 없어 엑셀에 쳐보고 셀 서식에 들어가 숫자(한글)로 변환한다. 그렇다는 이야기. 돈이란 누구에게든 너무나 중요한 화제이고 생계여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틀리면 절대 안 된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확신으로 가득 차서 숫자를 보았지만 잘못 보고 쳤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도시 괴담 혹은 오피스 스릴러.
장강명의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대체 출판업계는 어떤 집단이란 말인가.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단 말인가. 일부만 이럴 테지.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책에 나온 사례의 출판사들은 유명한 곳이었다. 책에서는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기사에 이미 나온 곳들이라 실망이 한가득이었다. 작가들이 책을 쓴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다. 작가는 궁금하다. 자신의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그에 맞춰 들어온 돈은 제대로 정산이 된 금액인지. 당연한 궁금중 아닌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출판사는 거래의 기본적인 조건을 지키지 않는 집단이라는 게 밝혀진다. 책의 판매량을 집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작가에게는 제대로 된 정산서를 보내주지 않는다. 어느 날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내 책이 이 정도 팔렸구나 짐작할 수 있단다. 출판사마다 다른 정산 방식이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한 출판사에서 같은 작가의 책을 정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분명 출판사도 회사니까 회계담당자가 있을 텐데.
나야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아서 문학상을 수상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인생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알고 싶다.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면 상금을 준다. 상금이 곧 선인세라고 한다. 수상작은 상금을 초과할 정도로 팔리지 않는 이상 인세가 들어오지 않는 방식이라고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말해준다. 급여생활자들은 매달 급여명세서를 받는다. 당신의 월급에서 4대보험료와 소득세, 지방 소득세 얼마를 뗀다는. 기본적인 일이다. 작가들의 경우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창작물을 판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책의 판매량과 그에 따른 정산 내역서를 받아보아야 한다. 통장에 얼렁뚱땅 같이 들어온 돈으로 판매량과 정산내역을 짐작해 보는 게 아닌. 책의 판매량 집계가 문제라고 하는데 책에서 지적한 대로 편의점에만 가도 포스기에는 하루 동안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기초적인 시스템이 출판업에서는 통용되지 않을까.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출판사의 정산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과 돈 이야기 말고도(「입금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은 왜 이렇게 슬플까.) 한 작품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소설가와 생활인으로서 균형을 맞춰 살아가기 위한 분투가 담겨 있다. 소설가가 읽은 책과 추천하는 책(그래서 심재천, 정아은, 임성순의 책들을 잔뜩 샀다.)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까지. 그러나 나는 유독 소설가가 제때 받지 못한 돈과 인세 보고서도 보내지 않는 출판사의 허술한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작가들이라 하면 배울 만큼 배우고 배울 만큼 배워도 더 배우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단 말이지 하는 안타까움에 더해서 말이다. 하긴 나조차도 받아야 할 돈이 있음에도 그저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 작가들만 이럴까.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임금 미지급 사태는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소위 문화 산업 종사자들인데. 작가들 못지않게 배운 사람들인데 정상적이지 않은 체계로 일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소설이 어떻고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리뷰를 쓸 줄 알았는데. 돈 이야기만 했다. 그런 책이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이상한 판이구나 그곳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기를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