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희정 지음 / 갈라파고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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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괜히 직장인가. 그곳에서 일할 이유가 있으니 직장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일지라도,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것을 바랐을 뿐인데, 우리는 야금야금 미쳐갔다.

(희정, 『일할 자격』中에서)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요? 했을 때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OO 님 야근하시면 추가 수당 받나요? 고작 그런 질문이라니. 괜히 긴장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업무 시간에 일을 다 못해 남아서 하는걸요. 일을 못 해서 매일 이러고 있습니다. 자기 비하가 뒤섞인 횡설수설을 하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침묵이 쌓였다. 사무실에 CCTV가 있고 이걸 사장이 매일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 녹음까지 될까. 되면 어때? 이판사판 공사판이지. 함부로 생각하다가도 말을 조심하게 되는 나날이었다.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번 듣는 말은 이런 식이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라고 하면서 고성 폭격을 시작했다. 나의 경우 일을 열심히 해서 많이 해서 문제였고 그래서 욕을 먹었다. 영화 《오피스》는 정규직을 앞둔 인턴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처지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지방 출신이면서 경기도에 사는 미례와 유학파이고 회사 주변에 원룸을 얻어 사는 다미.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일을 하는 미례는 열심히는 하는데 센스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다미는 일도 잘하며 센스가 있고 여유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장르는 스릴러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더 소름이 돋았다. 미례에게 나를 이입하니 신파로 장르가 바꼈다. 열심히도 하면서 잘해야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희정의 『일할 자격』을 읽으면서 답을 구하고 싶었다. 아니  『일할 자격』을 읽으며 일하지 않을 자격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잘하면서 욕 먹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일이란 걸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을 책이니까 들을 수는 없고 읽고 싶었다. 지금 네가 하는 일 아무것도 아니야. 그 일하지 않아도 넌 살아갈 수 있어 하는 말. 


『일할 자격』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성실, 근면, 생산적인 조건이 온당한지 묻는다. 그만하면 할만한 거 아니야? 당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칼날 같은 질문에 맞서 왜 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는지 답해준다. 힘든 일을 하게 된 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형편없는 말에 맞서기 위해 『일할 자격』은 쓰였다. 


책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었던 경험담은 다향하게 이상하고 미쳐있었다. 근속 기간이 2개월인 청년, 그가 일하지 않은 이유는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집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여주기 식으로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였다. 그는 정규직 사원이었는데도 일을 그만뒀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유부남들이 수시로 껄떡댔다. 그래도 일을 그만두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걸 숨기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것만 빼면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과체중이지만 나이와 외모 비하를 들지 않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이 문제라고 하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더는 하지 못하는 일이란 게 있다는 걸 안 뒤로 마음이 다치게 된다면 그만하자 싶었다. 『일할 자격』은 몸보다는 마음을 다친 사람들의 슬픔이 묻어 있는 책이다.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을 다치게 된다면 나에게 일할 자격을 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돈을 버는 건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책도 사 보고 커피와 빵도 사 먹고 키압 낮은 키보드도 몇 번 고민 끝에 사서 쓰지 않겠는가. 그래서 중요한데 나를 다치게 하면서 까지는 벌고 싶지 않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 이제는 안다.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을 자격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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