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난의 시대 - 2020 문학나눔 선정도서
김지선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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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이런 짓을 했다.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유리 진열장을 보면서 이것 빼고 다 주세요 하는 중국 부호들이나 한다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진열장에 들어 있는 디저트 하나를 빼고 전부 산 건 아니고 첫 번째 줄에 있는 디저트 한정이었다. 진열장이 컸냐 그건 아니고 가정용 광파 오븐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날 왜 그랬을까 잠시 이성을 차리고 생각해 보았다. 연차를 냈고 나흘이나 쉬는 날의 시작일이었다. 들떠 있었다. 그렇게 구입한 디저트의 가격은 20,400원.


인터넷 게시물에 이런 글이 있어서 누워 있다가 격한 공감을 했다. '일 안 해도 재산이 늘어나면 부자, 일 안 해도 재산이 그대로면 중산층, 일 안 해서 재산이 줄어들면 서민, 일해도 재산이 줄어들면 빈곤층.' 바야흐로 고물가 시대, 절약방에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소비를 제재해 주는 시절에 계층을 이렇게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서민. 아. 그래서 내가 혼자 사는구나. 중산층 정도는 되어야 결혼을 한다지 않는가. 


우아와 가난은 서로 어울리는 단어인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국어 교과서에 역설법의 새로운 예시로 실어도 될 정도로 '우아한 가난'은 시대적 사명을 띠고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의 언어이다. 김지선의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빈곤 속의 풍요를 이야기한다. 집은 사지 못하지만 브랜드 지갑은 살 수 있다. 미술품은 모을 수 없지만 책은 모을 수 있다. 티파니 귀걸이는 못 사지만 샤인 머스캣은 살 수 있다. 


가성비, 가심비를 따지며 대체재로 가난한 오늘을 위로하며 사는 우리들.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소비, 가난, 청춘, 미래라는 주제로 우리를 걱정하는 책이다. 작가의 경험담을 곁들여 가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증여, 상속이 아닌 이상 집을 가질 수 없는 청년들의 소비 패턴은 왜 그럴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고민한다. 


소확행을 하다가 소확횡을 한다. 내가 이것도 못 사겠어 혹은 이것도 못 먹겠어 폭발하면서 돈을 쓴다. 그러곤 후회한다. 잘 참다가 이번 달 예산 설정을 하고 여기까지 써야 생각했다가 충동적으로 외식을 하고 물건을 사들인다. 우아해지려다 가난해지는 슬픈 하루의 끝이다. 가난이라는 단어 앞에 긍정의 단어를 붙여서 지금의 가난을 위로하려는 시도이다. 그렇게밖에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가난은 그냥 가난인 것을. 가난은 우아해질 수 없고 그저 누군가는 이 가난을 훔쳐서라도 자신의 성공 서사에 한 줄을 보태고 싶어 하는데. 


물건 살 때 가격표를 보지 않는 것을 죽기 전까지 할 수 있을까. 햄 한 봉지를 사더라도 그램 수를 비교하느라 냉장 매대를 떠날 줄 모르는 뒷모습인데. 『우아한 가난의 시대』에는 나와 너를 합친 우리들의 서성이는 뒷모습이 있다. 책에 나온 주제 중 하나에 나도 답을 해보련다.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은 월급 받기 전 주의 나의 통장 잔고이다. 삼 주 차까지는 잘 참았다가 막판에 닦아 쓴다. 하나 더 엄마와의 기억. 


환승하면 되는데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엄마는 비가 와도 버스를 타고 오지 않고 걸어서 집으로 걸어왔다. 돈을 쓰고 나면 죄책감과 우울해지는 이유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추천한다. 나의 비정상성은 그래도 괜찮다고 어루만져 준다. 가난의 시대에도 일상은 우아해야 함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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