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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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애증의 역사도 엔트로피처럼 증가하고 있어. 우리는 앞으로 서로를 점점 더 버거워하게 될 거야. 극적인 화해, 영원한 화해는 없어.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다시 화해할 거야. 이 짓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지친다, 하면서도 계속 그렇게 할 거야. 그러다 보면 노인이 될 거고,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을 거고, 그때 비로소 영원한 그리움과 사랑이 탄생할 거야. 


(이서수, 『엄마를 절에 버리러』, 「있잖아요 비밀이에요」中에서)


그렇다. 사는 동안은 싸우고 그러다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굴다가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하며 지냈다. 엄마와는. 내내 좋지도 내내 나쁘지도 않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시간을 계속해서 살 줄 알았다. 멍청하고 한심한 착각이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통화를 했는데도 통화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 그때 사용한 휴대전화에는 통화 중 녹음 기능이 없었지. 


두 번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있는 힘껏 힘을 내 내 이름을 불렀던 순간은 기억에 남는다. 환청처럼 들려온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대곤 했었지.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고 이제 내가 노인이 되면 되는데 그것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으니 '비로소 영원한 그리움과 사랑이 탄생' 해버렸다. 죽음은 미움을 밀어내고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그리움과 사랑을 던져주었다. 


이서수의 소설집 『엄마를 절에 버리러』에는 엄마의, 엄마에 의한, 엄마를 위한 세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엄마를 주제로 한 테마 소설집이다. 아픈 아빠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무협 애정 소설을 쓰는 엄마, 자식들에게 부양의무를 지우지 않기 위해 정신 장애인이 되려는 엄마. 세 엄마들과 더불어 후회를 자주 하는 엄마까지. 대체 엄마들의 사연은 어쩌자고 듣기만 해도 난감하고 가슴 답답하고 애달픈가. 남의 엄마 나의 엄마 가릴 것 없이 말이다. 


나의 엄마 이야기는 차마 마음이 아파서 할 수 없고 이서수가 들려주는 남의 엄마 사연은 남길 수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왜 이러고들 사나 왜 이러면서도 살아가나 입술을 앙다물게 만든다. 살아지니까 살아간다. 살아가니까 살아진다. 동어 반복의 말장난 같은데 사는 게 진지할 수 있나. 매사에 심각하고 억울해하다 보니 죽게 되더라. 출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할머니가 있는데 저이의 현재를 왜 가질 수 없었나 한탄스럽다. 


표제작이기도 한 첫 번째 소설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제목만 놓고 보면 오해하기 좋다. 대체 엄마를 왜 버리러 가나, 패륜 소설 아닌가 하는. '나'를 임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결국 병든 아빠를 위해 가장 역할을 하느라 마음에 병이 든다. '나'는 악착같이 일해 번 돈을 모두 아빠의 병원비로 쓴다. 오랜 투병 끝에 아빠는 눈을 감는다. 엄마와 나에게는 빚이 남는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에는 일이 끝나고 난 뒤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쓰는 딸과 그 딸의 영향을 받아 무협 애정 소설을 습작하는 엄마가 나온다. 소설이라니. 대체 왜 이러나. 요즘 세상에 소설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나. 그래도 딸은 소설을 써서 첫 달에 28만원을 번다. 중졸 학력을 가진 엄마는 좋은 생각을 읽고 밑줄을 긋고 수필에 가까운 일기를 쓴다. 급기야 미용실을 배경으로 늑대로 변하는 주인공을 등장 시켜 소설을 쓴다. 


코로나 시대의 가족 일상을 그린 「있잖아요 비밀이에요」에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그레고르 잠자가 자신 같다고 말하는 엄마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는 딸이 나온다. 사위가 코로나에 확진 되어 딸과 모텔에서 잠시 생활하는 엄마. 무엇을 해서 남은 생활을 이어갈까 고민하는 엄마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이어서 이서수는 자신의 엄마와 과일을 사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무지개떡처럼」에서 그린다.


엄마들의 가난과 노동 문제를 『엄마를 절에 버리러』에서는 다룬다. 하루에 3천원만 줘도 일을 하겠다는 엄마. 반려동물 장례 지도사가 되겠다는 엄마.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썼지만 할 수 있는 게 요양보호사라서 마음이 진정되면 그 일을 다시 하겠다는 엄마. 엄마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동을 갈망한다.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한다. 이제 나 역시 이력서를 내면 나이 때문에 서류에서 탈락하는 시기가 되었다. 


아무도 안 받아주고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살아서 그럴 때가 오는 걸 축복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그 애는 내가 아무도 없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랩처럼 주절거리는데 왜 그럴까.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기애 과잉 같은데 정말 궁금하지 않다. 타인의 가족사. 특히 엄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그저 읽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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