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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있어 - 은모든 짧은 소설집
은모든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평점 :
은모든의 짧은 소설집 『선물이 있어』는 전작 『우주의 일곱 조각』과 연결된다. 성지, 은하, 민주가 다시 등장한다. 이야기라는 하나의 세계가 끝이 나면 그 안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서 인물들은 끝이라는 걸 운명처럼 받아들일까. 아니면 다른 세계로 가게 해달라고 시위를 벌일까. 그렇다면 이야기의 세계는 계속 열려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이 끝나도 살아간다. 그러다 힘을 낸 작가가 다시 이야기 안으로 인물을 불러낸다. 하염없이 숫자를 보게 만드는 가스비 고지서를 던져두고 아싸 이번엔 어떤 설정이야 이러면서 뛰어나오는 상상을 한다. 은모든은 은모든 유니버스를 구축하려나 보다. 설정만 바꾸고 기존의 인물을 호출해 새롭게 살게 하는 것이다. 시련과 고난을 겪게 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도 해주면서.
『선물이 있어』는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은 소설집이다. 책을 읽다 보면 조금씩 지루해지기는 시기가 있다. 지금은 활자가 아니어도 재미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도 심심할 틈이 없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눕라벨을 실천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나 대신 여행도 가주고 나 대신 하루도 열심히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어찌나 행복한 일인지. 『선물이 있어』는 심각하고 파괴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흔한 일상의 어려움부터 도시 전설 같은 일까지 그래 그럴 수 있어 납득이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 몰입이 잘 된다. (여전히 읽기 어려운 SF 소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몇 백 년 후의 지구 상태를 상상하는 건 피곤한 일.)
소설 중에 흥미로웠던 건 「결말 닫는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이야말로 앞으로의 은모든 문학 세계를 암시하는 중요한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열린 결말과 닫힌 결말 중 어느 쪽을 선호하시는지. 갑오개혁 이전에 쓰인 고대 소설이 꽉꽉 닫힌 결말을 보여줬다면 이후의 소설은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된 거야 죽은 거야 산 거야 하는 아리까리하고 의문스러운 결말로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는 걸로 승부를 봤다.
이해 가능한 결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닫힌 결말의 소설을 읽으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래 해결됐고 다음 이야기 들어와 들어와. 「결말 닫는 사람들」의 설정은 흥미로웠다. 나 같은 사람을 소설가는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말 닫는 사람들을 피해 은모든은 모든 이야기의 끝을 살짝 열어둔다. 다른 행성에서 다른 차원에서 소설의 시간은 흘러가고 소설가인 내가 끝이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선물이 있어』에서 보여준다.
길을 걷다가 커피를 마시러 가게에 들어갔다가 문이 보인다면 한 번쯤 열어보시라. 두통과 피곤을 그곳에 두고 언제든 다시 나오면 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