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MBTI 테마소설집 1
정대건 외 지음 / 읻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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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A형. ISFP.


이렇게 밝히면 나에 대해 다 알 수 있나.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가겠지. 소심하고 소심하고.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고 누워 있어서 넘나 행복한 사람. 누워서 내일 뭐 해야지 계획하지만 막상 일어나면 계속 누워 있다. 일어나니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할 말이 있는데 울음이 먼저 터져서 못하고 이박 삼 일 동안 앓아누우면서 그때 그 말을 했어야지 대본을 쓰고 있다. 


알라딘에서 독자 펀딩 한다고 푸시 알림을 보내왔다. 내가 전화기에 이런 설정을 해놨던가. 아무튼. 토끼와 호랑이 일러스트 표지가 깜찍한 무엇보다 이서수의 단편이 실려있다는 말에 홀린 듯 펀딩에 참여한 책,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에 뒷장에는 내 이름이 있다. 펀딩에 참여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혈액형 성격학의 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MBTI의 시대가 도래했다. 


성격을 정의하는 단어는 500개가 넘는데 빠르고 간단한 걸 좋아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알파벳 16개로 상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MBTI는 인기가 있나 보다. 하도 MBTI MBTI 하길래 나도 검사해봤다. 결과는 ISFP. 인터넷에서 잇프피에 대해 찾아보다가 마치 점쟁이 앞에서 맞아요, 맞아, 제가 그랬어요 하는 것처럼 되더라.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알파벳 네 개는 나에 대해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는 각각의 MBTI 유형들을 주제로 묶은 테마소설집이다. 인티제부터 인팁, 엔팁, 엔프티 등 여섯 개의 MBTI 유형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잇프피는 없나. 잇프피는 이 소설집에는 없고 2권에서 소설가 이주란이 그린단다. 그때까지 존버. 사회적인 동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무람없이 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란 날씨와 날씨. 그 외 다른 걸 물어보는 걸 극혐하는지라 어색해지고 만다. 


그럴 때 MBTI를 물어보는 건 더 최악이겠지. 80년 대생 티 나게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는 트렌드에 뒤처지는 자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 MBTI가 더 나으려나. 확실한 자기 의견이 없고 글을 쓸 때도 단정 짓는 걸 어려워하는 잇프피라 지금도 이랬다저랬다 하고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내가 잇프피라는 걸 알았고 아이와 이의 성향 차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서 물어보곤 한다. 


이서수의 소설 「알고 싶은 마음」의 내용처럼 알고 싶어서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MBTI를 물어보는 거라면 귀엽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테마소설집을 읽으면 좋은 게 하나의 주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개성과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한 작가를 좋아하면 거의 사찰 수준으로 좋아하는데 MBTI까지 알 수 있다니 어찌 펀딩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잇프피답게 주말 이틀도 누워 지냈다. 여행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좋아하죠, 여행, 내방여행이요라고 했다가 갑분싸해졌지만 잇프피들은 누워서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책으로 여행 지식 쌓고 유튜브로 본 여행지의 감성을 대신 느끼며 눈 오는 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눈이 내리는 풍경을 화면에 띄워 놓은 채 초콜릿을 까먹는 아주 훌륭하고 방구석스러운 분위기를 느끼느라 피곤하다. 


책에는 소설집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자신의 MBTI에 대해 인터뷰한 글이 있다. 잇프피면서 인프피 소설을 쓴 김화진 소설가의 답변이 웃겼다. 잇프피 영화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는데 답변이 자신이 없어서 거의 울고 있다고. 어쩜. 잇프피들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를 절대 하지 못하는군. 같은 인류를 만나서 웃기고 반가웠다. MBTI 그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각박한 세상에 잠시 어색함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다면 MBTI 할아버지라도 믿을란다. 


나 잇프피니까 싫은 소리는 하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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