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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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수영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고 말았다. 감히 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혁진의 소설 『사랑의 이해』는 제목만 들으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사랑 담론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소설의 형식을 취한 이해 불가능한 사랑을 네 남녀를 등장시켜 풀어낸다. 풀어낸다고 썼지만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건 소설을 끝까지 읽고 오랫동안 상수, 미경, 수영, 종현을 잊지 못하는 독자의 몫이다. 


건조한 문체의 소설이다, 『사랑의 이해』는. 간단하게 말하면 은행에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인데 간단하게 말해지지 않는 소설이다, 『사랑의 이해』는. 그 옛날 《사랑의 스튜디오》 버전 식으로 얘기하자면 네 남녀가 쏘는 사랑의 막대기는 어긋나기만 한다. 상대가 관심을 표하면 일단 받아들인다. 그러고 생각한다. 내가 저이를 사랑하는 걸까. 


관심과 위로에 목말라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나누는 애정결핍으로 가득 찬 연애를 그리고 있다. 다시 안수영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되고 있어 원치 않아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사랑의 이해》 클립을 보고야 말았다. 덕분에 책을 읽기도 전에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그래 그건 좋고. 활동하지 않는 뇌세포를 굳이 깨울 필요 없게 도와준 거니까. 


문가영=안수영으로 가고 유연석=하상수로도 가면서 『사랑의 이해』 속으로 쉽게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소설 다 읽고 드라마 봐야지 했던 건 결말을 미리 알고 싶고 한 권의 소설을 16부작으로 늘였으면 이야기 진행이 더딜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이제 나는 결말을 알고 주인공의 미래까지도 아는 전지적작가시점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사랑의 이해』를 읽으므로써. 


아. 안수영. 이제 진짜 안수영 이야기. 소설의 결말로 나아가면 안수영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든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했다. 상수는 끝까지 수영의 행동을 이해 못 한듯싶다. 왜, 왜 그랬어? 수영아를 묻고 싶지만 참는다. 나는. 수영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지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차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은행에서 벌어지는 직장 로맨스 성격을 띠는 『사랑의 이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느 직장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차별 서사도 다루고 있다. 수영은 창구 직원인 텔러이고 종현 역시 계약직 청경이다. 상수나 미경은 행원으로 분명하게 계급이 나누어진 채 사랑을 시작한다. 수영을 두고 회식에서 나누는 쓰레기 같은 대화들. 능력이 있음에도 외모와 언행으로 말해지는 수영의 업무. 자신을 뻔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는 상수 앞에서는 할 말을 다 하지만 집세와 생활비를 생각하느라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술자리에서의 수영의 머뭇거림. 


그런 수영의 머뭇거림을 알아채고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알려주는 인물의 등장. 그래서 수영은 새벽에 전화를 건다. 


가장 솔직해져야 할 사랑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왜곡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제 사랑조차 중산층만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조건과 조건을 따져가며 조건 밖에는 남지 않는 연애의 끝은 쓸쓸하다 못해 허무와 후회에 자책이 뒹군다. 사랑의 이해라고 했지만 사랑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내내 외치고 있다. 이해하려 할수록 알 수 없게 되는 정답 없이 오답풀이만 가득한 사랑이라는 난제를 받아든 우리는 상대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준다고 해봤자 오해하기 딱 좋은 이상한 진심 밖에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수영이라는 인물을 초반부에 그리는 방식은 여전히 전형적이고 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간과 끝으로 가기 위한 빌드업이었겠지만 이는 작가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상수는 수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영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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