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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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와 전화를 하다가 나를 소개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는 자신의 명함을 보내줄 테니 나도 명함을 보내 달라고 한다. 나는 명함은 없다고 이름을 말해준다. 전화기에 찍히는 번호로 연락을 주면 된다고. 종이 명함만 봤는데 이미지 명함도 있구나. 명함을 파면 이미지도 주는 걸까. 아직도 이런 걸 모른다. 직함과 회사, 이름, 번호가 있는 명함을 본다. 다들 명함이 있나. 


오랫동안 명함이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할 일이 없었다. 직함이 없는 일들을 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에서 지은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그렇게 직함과 명함이 없는 일을 한 여성의 노동을 소개한다. 책의 표지에는 두 가지 문장이 쓰여 있다.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와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첫 번째 출근길」을 소개하는 문장은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이다. 책으로 들어가기 전 선전포고 같은 이 문장을 보면서 가슴이 떨렸다. 여성 댄서들의 배틀 장면에서 나온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를 패러디 한 문장은 그해가 지나고도 사람들에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언니들이 여기에 있다. 언니들이 춤을 춘다. 언니들이 싸운다. 언니들이 살아간다. 오빠들만 난무하던 이 판에 언니들이 등장했다는 결의가 담긴 선언이었다. 


서울 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에서 '훈이네'라는 간판을 달고 20년째 밥을 짓는 손정애 씨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명백히 보이는 곳에서 노동을 했지만 보이지 않는 척을 했던 여성들의 '진짜 일'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양한 연령에서 필수 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책의 소개 글처럼 명함만 없을 뿐 자부심과 의지를 가지고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게 일상적이었다. 여자가 배워서 뭐에 쓰냐는 어느 집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더 배우고 싶은 갈망이 있었지만 오빠나 남동생을 위해 가난한 집안의 경제를 위해 여자아이들은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공장에 들어가거나 남의 집 살이를 하고 작은 회사의 경리로 들어가 결혼 직전까지 집안의 경제를 책임졌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는 그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 몇 번 보지 않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남자의 집안을 또 책임져야 하는 굴레에 갇힌다. 언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쓰려지지 않았다. 가사 노동을 하면서도 배우고 봉사활동을 했다. 글을 몰랐던 시절의 서러움을 극복하고자 노인대학에 나가 한글을 배운다. 


동일한 일을 하는데도 동일 임금을 받지 못한다. 일을 하고 돌아와도 남자는 그대로 집에서 쉰다. 여자는 가정으로 다시 출근이다. 사회와 구조가 여성 노동의 시스템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오로지 개인이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책에 소개된 여성들은 나이가 먹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오늘에 감사해한다. 내가 벌어서 쓴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노동 현장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임, 과장, 차장이라는 직함이 적힌 명함이 아닌 육아 전문가, 맏언니, 고등학생, 재테크 마스터, 가사노동자가 쓰인 명함이 사람들의 손에 주어질 날을 기다린다. 이게 뭐지가 아닌 당연하게 그렇구나 이 사람의 일은 이렇구나 받아들여질 사회를 위해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첫 발을 내디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집순이, 한국문학 애호가, 라춘러버 정도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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