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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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인생 목표를 바꿔야겠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고 근엄한 인생 목표가 있었다고 착각할지 모르겠다. 그런 건 애초에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울지 않고 마음 상해하지 않으며 사는 정도의 소소한 목표가 있었더랬다. 세운다, 인생 목표. 꼭 해내고 싶다, 오늘부터의 인생 목포. 


죽기 전에 스티븐 킹을 꼭 한 번 만나고야 말겠다는 인생의 목표. 만나서 아임 유어 빅 팬이라고 《엑스파일》에 멀더 요원이 자신의 우상을 만나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한 것보다 조금 더 격앙되게 말하며 가지고 있는 책에 사인을 받는 것. 스티븐 킹의 최근작 『나중에』는 책을 읽는 재미란 이런 것이구나를 오랜만에 느끼게 해줬다. 


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자, 가자, 가즈아를 외치며 읽었더랬다. 소설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나중에』는 공포 소설이다. 공포 소설인데 애틋하고 서글프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의 제이미 콘클린이다. 소년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산 사람들 사이에서 죽은 이를 알아보고 그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제이미에게는 아버지가 없고 엄마와 외삼촌이 있다. 출판사에서 저작권 대리인으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외삼촌은 이른 나이에 치매에 걸려 자신의 사업을 엄마에게 넘기고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 여섯 살의 제이미는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문 앞에서 방금 죽은 이웃 여자를 만난다. 모나라는 그 여자는 죽어서 자신의 남편 곁을 맴돌고 있었다. 


모나는 제이미가 그린 칠면조 그림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고 뇌졸중으로 죽기 전 반지를 놓아둔 장소를 알려준다. 제이미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엄마는 반지를 찾아준다. 제이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다는 걸 알았지만 이 사건을 이후로 엄마는 제이미의 특별한 능력을 믿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죽은 이가 산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깜찍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한다. 


죽은 자를 볼 수 있고 그에게 진실만을 캐낼 수 있다면으로 가정한 『나중에』는 어린 소년의 성장 서사를 다루는 동시에 어른들의 추악한 이면을 그린다. 부와 명예를 가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의를 외면하는 어른을 제이미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해치운다. 거대한 반전이 소설의 후반부에 기다리고 있다. 소설의 제목인 '나중에'라는 말은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고민, 지금의 슬픔, 지금의 고민은 나중의 문제. 아득한 죽음의 세계로 건너가기 직전 죽은 자들이 들려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소년의 활약상을 보며 뭐든 다 괜찮을 거라는 위로를 받았다. 차마 밝힐 수 없는 비밀이라고 죽은 자들은 쉽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진실의 무게를 견디는 건 산 자들의 몫. 스티븐 킹이 여전히 살아 있어 공포 성장 소설을 써주어서 고맙고 감격스럽다. 


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어른이 된 제이미가 죽은 자들을 괴롭히는 알 수 없는 존재와 다시 대결하는 이야기로. 꼭꼭 써주세요. 한국의 빅팬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다립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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