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버린 - 김유담 소설집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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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에 담긴 김유담의 여덟 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나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화면 분할로 왼쪽에는 과거가 오른쪽에는 현재가. 과거 쪽 영상을 보고 있으면 기이한 슬픔이 차올랐고 현재 쪽 영상에서는 헛웃음이 났다. 부끄러움과 모멸을 번갈아가며 느꼈다. 탬버린의 주인공 은수가 타의로 대표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열창할 때. 아버지의 전신에 퍼진 암을 치료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전 애인이 들어준 보험금을 떠올릴 때.


소설 속 장면들을 따라가면 과거에 내가 한 후회와 오늘의 내가 한 잘못이 겹쳐지는 과몰입의 상태를 경험했다. 그만큼 『탬버린』의 소설들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 지방을 벗어나 서울로 상경한 여성 화자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과 안쓰러움을 보여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기 시작한 여성들이 겪는 수모와 자기 비하는 오늘이 어제보다 나아지기는커녕 후퇴만 일삼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선옥이 80, 90년대의 누구나의 가난을 그리고 있다면 김유담은 2020년대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이들의 가난을 보여준다. 그때는 누구나 가난했다면 지금은 어떤 이들만 가난하고 슬퍼한다. 집에서의 경제적 지원은 바랄 수도 없고 오히려 힘들게 번 아르바이트비를 다시 부치지 않는다는 것에 만족하는. 누군가는 죽어야 8평 오피스텔을 얻고 포도밭을 살 수 있는 목숨 값에 빚지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하루 종일 도자기에 전사지를 붙이고 점심값 내는 게 부담스러워 밥을 굶는. 첫 데이트 때 남자친구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가방 하나를 사려고 하는. 


과거의 나를 불러내어 그때의 장면을 보여줄 때 상대가 보이는 의아하다는 반응에 『탬버린』속 여성 화자들은 후회를 시작한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야 했던 청춘은 나이만 먹는다. 아등바등해도 현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마음을 단념한 채 끝이 난다. 나를 괴롭히는 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다. 


취업은 번번이 실패하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도 회식 자리에서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해야 한다. 자율학습을 빠지며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서 갈고닦았던 추억의 탬버린은 현재로 불려 나와 서글프게 흔들린다. 학교 폭력에 시달린 언니를 보호하느라 지친 동생은 어느 날 말없이 찻잔과 에코 가방 하나만을 들고 떠난다. 평범하고 싶다는 건 이제 누구나의 소망이 되어버린 시대. 평범해지기 위해서는 특별해져야 한다는 걸 사명처럼 여기며 사는 청춘의 모습을 『탬버린』에서 만날 수 있다. 


기이할 정도로 그들과 나의 과거는 비슷하고 현재의 모습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아득한 슬픔에 머무르는 겨울이다. 


(김유담의 청춘 삼부작은 『탬버린』, 『이완의 자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이다.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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