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2 소설 보다
김기태.위수정.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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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힘드니?

사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저었다. 언니가 그랬잖아. 이 세상엔 안 힘든 일이 없다고.

나는 그랬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엔 안 힘든 일이 없고, 안 힘든 일을 찾아보는 일조차 너무 힘들어서 곧바로 포기하게 되었다. 우리는 힘들게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그렇더라도 쌓이는 울분과 스트레스는 어찌할 수가 없었고, 간간이 만나서 전시를 보거나 술을 마시는 것으로 풀었는데 그마저도 1년 전부터는 뜸해졌다.

(이서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中에서)


10월인데 습한 상태를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틀었다. 10월에 청구되는 관리비는 9월에 사용한 내역이다. 감히 예상을 해보자면 지금껏 낸 관리비 중에 최고치를 찍을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럴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사용한 만큼 나오고 사용했으니까 내야지. 한 달에 150만 원 받을 때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보다 30만 원 더 받는 지금은 악착같은 마음이 사라지고 쓸 땐 써야지 내가 이것도 못 사는 건 아니라고 하는 기분에 펑펑까지는 아니고 얼마를 모아야겠다는 의지 없이 쓴다. 은행 앱으로 든 적금을 깼다가 다시 채워 넣기를 반복한다. 모으는 건 힘들고 쓰는 건 참 쉽네. 유지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 의도 없는 선물을 받을 때 기분이 확 좋아지기도 한다. 


『소설 보다 : 가을 2022』에 실린 이서수의 단편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에서 사영은 '나'에게 가방에서 스팸 여덟 개를 꺼내준다. 그 순간 '나'는 사영에게서 느꼈던 거리감이 줄어든다. 서일페에서 사영이 산 물건들을 줄 때는 '놀라울 정도로 금세 화가 수그러'든다. 이런 장면들. 서울에서는 집을 구하지 못하고 군산이나 고흥에 집을 알아보고 삼천만 원이 있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걸 서로에게 알려주는 모습들. 상대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스팸과 굿즈를 받아들면서 사그라지는 이야기에서 안도를 느낀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서 위수정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감정에 대해 들려준다. 나이가 들 수 있을까. 과연 이런 뭣 같은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소설에서 그럴 수 있다고 하니까 미래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내게는 요양원, 노후, 여든여섯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모처럼 쉬는 일요일은 무얼 한지도 모른 채 오후만 남아 있어 허무하고 서글프다. 소설은 노후의 시간이 우리가 늘 살아가는 일요일 오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이나 불안, 의아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김기태는 「전조등」에서 삶의 모순 따위를 느끼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 낸다. 소설에서 그리는 모든 것이 완벽한 형태의 인간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런 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는 것. 인생을 하나의 도전 과제로 삼는 듯한 태도의 인물인지라 주변에 없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의 소설이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개소리를 들어도 잊어버리자. 겨울의 소설이 오면 읽어내고 누가 먹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을 줄 때 환하게 웃자. 안 힘든 일을 찾는 게 어려워도 끝까지 찾아내서 안 힘든 일을 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 현실 따위는 없으니 울분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안녕, 잘 있어 손을 흔들고 네, 전 자유입니다 멘트 날려주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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