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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평점 :
박상영의 연작 소설집 『믿음에 대하여』에서 강조하는 주제 문장은 '성격은 곧 운명'이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말이 맞을까 아닐까를 계속 곱씹게 된다. 네 편의 이야기에 담긴 인물들의 생활상을 따라가다 보면 지난 시간의 기억이 방해꾼처럼 찾아와 읽기의 몰입을 깨뜨린다. 이게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인지도 못한 채 당하기만 했던 건 비단 나만이 아니었군 이러면서.
첫 번째 소설 「요즘 애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황은채와 김남준은 매거진 C에 수습기자로 취직한다. 말이 기자지 온갖 잡다한 일 커피 내리기, 식물 관리 등의 일이 업무로 주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이 되면 SNS에 글을 올려야 하고 사수 배서정의 일관되지 않은 업무 지시를 따라야 하는 사회 초년생의 고달픔을 그린다. 존버라는 말이 왜 그렇게 싫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는 자가 승리하리라는 근거 없는 미신 같은 말, 존버.
김남준은 어떤 결단을 내린다. 배서정처럼 될 것인가. 배서정 같은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인가. 일을 하다 보니 알겠다. 누구와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다는걸. 나는 저 인간처럼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어느덧 나도 저 인간이 되어 버리는 곳은 직장. 결국 직장에서의 자아를 만드는 건 자신의 일이 되겠다.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과감히 자신을 지키는 자가 건강하리라.
표제작 「믿음에 대하여」는 사진작가로 잘나가던 철우가 애인의 죽음을 겪고 난 이후의 일을 그린다. 철우의 애인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죽음 이후에 거짓말은 밝혀지고 철우는 그때까지 자신이 믿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안정된 생활은 그렇게 믿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불성실한 아버지와 사느라 지쳐 있었고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지를 찾는다. 바이러스로부터 불행으로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줄 것이라며 믿음을 강요한다.
퇴사하기 전 대표 앞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서 물어보라기에 빈말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는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나의 단점을 지적해대기에 나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손절. 성격을 드러내는 자와 끝까지 성격을 드러내지 않다가 방심하다가 드러내는 자를 겪어보니 알겠다. 일을 할 때는 성격 자체가 없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는 걸.
『믿음에 대하여』에서 벌어지는 직장의 일들, 특히 황은채가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지키려고 했던 예의는 노력에서 비롯된 거라는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걸 그대로 입 밖으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생각은 하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게 평서문으로 말하는 황은채. 요즘 애들이었던 시절에서 요즘 애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현재에서 황은채의 노력의 모습을 잊지 않아야겠다.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말은 대부분 헛소리고 상대를 슬프게 만든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나를 바꾸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바꾸는 게 상대적으로 쉽고 정신건강에 좋다. 박상영이 그리는 직장 이야기는 현실 공포라서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동성 간의 사랑을 인류 보편의 사랑으로 봐달라는 호소는 당연하게 들린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식으로 말이다. 누구를 사랑하든 그건 문제가 아니고 직장에서 제발 인간의 존엄성 정도는 지켜 달라는 외침이 더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