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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밑 두개골 ㅣ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9년 8월
평점 :
아쉽게도 P. D. 제임스의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는 『피부밑 두개골』로 막을 내린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서 코델리아가 탐정이라는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피부밑 두개골』은 탐정 일의 만만치 않음을 그려낸다. 사건 의뢰라고 들어오는 건 사라진 고양이를 찾는 일이 대부분인 프라이드 탐정사무소에서 코델리아는 용기를 잃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자한 성격의 모즐리 여사와 수다쟁이 베비스. 둘은 코델리아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함께 일을 해 나간다.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서 의뢰인들은 대놓고 코델리아를 못 미더워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델리아는 사무소를 꾸려나가기 위한 그달치의 경비를 셈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배우 클라리사 라일의 남편이라는 조지 경이 찾아와 사건을 맡기고 코델리아는 짐을 꾸린다.
죽음의 분위기를 풍기는 희곡의 대사와 음산한 그림을 그린 협박 편지 때문에 아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시섬에서 열리는 연극 공연에 코델리아가 가서 시중을 드는 척 협박 편지의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달라고 조지 경은 말한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보다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 일인가. 코델리아는 코시섬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피부밑 두개골』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다룬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 타인의 감정과 생활을 짓밟는 일의 결과는 참혹하다. 코시섬에 모인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나열하면서 협박 편지의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가는 일이 흥미롭다. 코델리아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지만 사건의 결과에 낙담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재치 있는 면면을 드러내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으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코델리아의 믿음, 희망, 낙관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델리아가 꿈꾸는 세계는 도래하지 않으며 여전히 탐정 일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을 거라 사람들은 냉소할 거라는 짐작이다. 이제 나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기로 했다. 내게 친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자기중심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없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기에. P. D. 제임스는 왜 코델리아 시리즈를 두 권만 썼을까. 코델리아에게 더 나은 세계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판단이 든 것이 아니었을까. 불친절하고 폭력적인 세계로 코델리아를 데리고 가기 미안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한 마디. 이 세계에 필요한 건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친절이 가식이어도 좋다. 제발 친절한 척이라도 해달라. 코델리아와 나는 그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