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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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를 흘려보냈겠지. 나의 슬픔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며. 누구의 눈물도 생각하지 않으며. 최저시급 정도의 돈을 벌고 느릿느릿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 등이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 있다가 잠이 드는 하루가 그저 최선이라고 여기는. 주말에 읽기 시작한 은유의 인터뷰집 『크게 그린 사람』을 읽으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있구나 허무하고 쓸쓸함을 느꼈다. 


내가 몰랐던 사건이 있고 사건 속의 사람들이 있었다. 일상인으로 살다가 어느 날 마주한 죽음 앞에서 투사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크게 그린 사람』에 있었다. 돈을 벌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젊은이들. 가족은 죽음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생업을 포기하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죽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은 언어로 글을 썼다. 


소설가, 언론인, 의사, 만화가, 활동가 등 은유가 만난 18명의 사람들의 이야기 안에서 여름은 뜨거워져 갔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어떤 날은 그것만 생각하느라 지쳤다.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평정심을 유지한 채 살아가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싶어 책을 읽는다. 『크게 그린 사람』은 크게 도움이 된 책이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해내는 것. 칭찬이나 응원 없이도 자신의 일을 다하는 것.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신념으로 삶의 의미를 다져가는 사람들을 알게 되어서 책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 묻고 답하는 건조한 형식 안에서 은유는 작지만 큰 사람들의 역사를 애틋한 마음이 되어 들려준다. 어느 날 안경을 쓰고 텔레비전에 나왔더니 화제가 되고 끈질기게 가난을 소설로 쓰고 해고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몇 십 년 넘게 투쟁을 하고 먼지 차별을 심심한 그림체로 표현해 내고. 


『크게 그린 사람』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요한, 씨돌, 용현의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그가 나온 다큐를 밤새 보았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무지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 출근 3일째 사랑하는 동생이 죽었다. 이후 누나는 유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욜로족으로 살던 누나였다. 아픈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크게 그린 사람』에는 아픔을 껴안고 살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투쟁기로 가득하다. 


행동하는 사람으로 운명이 바뀐 채 어제가 아닌 오늘을 바라보며 걷는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반성하지 않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요즘엔 전화를 자주 건다. 최대한 상대가 내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용건을 말한다. 그러다가도 상황이 꼬이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했던 말을 또 하는 반복하는 형태의 말 하기를 고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잘 들으며 이해하기. 이해가 완료된 질문이야말로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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